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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 강용의 덕/Fortitude(2014-02-09)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9-01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 강용의 덕(2014-02-09)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바오로 성인께서 “이러므로 너희는 천주의 간택하신 자와 거룩하고 사랑하옵는 자들로서 불쌍히 여길 줄을 아는 마음과 관용과 겸손과 양순과 인내를 입을지어다. 서로 참을 것이며, 누 만일 다른 이에게 비난할 것이 있으면 서로 용서할지니, 주 너희들을 용서하셨음과 같이 너희들도 또한 그렇게 할지니라.“(콜로세:3:12-13)라고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참고 견디며 용서해야 할 이웃들로부터 받는 고통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를 그리스도처럼 만드는 이러한 덕행을 우리가 실천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복음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듯이 추수시기, 즉 그의 천신들에게 명하여 저들을 분리하는 세상 종말 때까지, 그 분의 밭인 교회 안에는 가라지, 나쁜 잡초가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저 악한 자들이 있어 우리가 인내와 끈기 및 용서를 실천할 수 있는 그 시기까지입니다.

그래서 천주께서는 악으로 부터 선을 끌어냅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한 자들이 이 세상에 아무 의미 없이 있다거나, 주께서 저들을 교화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모든 사악한 사람들은 회개하던지, 올바르게 살려고 하던지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In ps. 54, 4).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말미암아 회두할 때에는 그의 회개가 천주께 커다란 영광을 드리지만, 설령 그가 회두하지 않더라도 그 악한 자가 있다는 것은 선한 사람들이 그들의 인내와 용서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견뎌야 할 고통도 없거니와 용서해야 할 모욕감도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실천할 수 있는 덕행만이 있습니다.


이러한 덕행은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처럼, 천주님처럼 만드는 위대한 덕행입니다: “이러므로 너희 성부 인자(仁慈)하심 같이 너희도 인자하여라.“(루까6:36)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네 원수를 사랑하며, 너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너를 핍박하고 망증(妄證)하는 자를 위하여 기구하여 하여금, 선인이나 악인이나 태양으로 다 비추시고, 공의(公義)한 자에게나 불의한 자에게나 비를 다 주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의 아들이 되게 하라. 대개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구실 받는 아전(衙前)도 이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또 만일 너희 형제들만 인사하면 너희가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외교인(外敎人)도 이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이러므로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 완전하심과 같이 완전한 자 되어라. “(마테오5:44-48)


이러한 덕행들은 커다란 강용(剛勇), 영적인 강건(剛健)함이 요구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말씀하시기를, 강용이란 사추덕(四樞德 )중 하나이며, 영적 생활에 매우 중요하다고 하면서 덕행은 좋은 행실에 대해 자신을 포함하여 어떤 사람을 선하게 만들게 하는 습관이라고 말합니다:


 “선한 행실은 이성의 일치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그의 행실을 이성에 따라 일치시키는 인간의 덕성을 포함한다. 이는 세 가지 방법으로 일어난다. 첫째, 무질서하고 그른 생각을 피함으로써 생기는 이성의 교정 그 자체이며, 이는 지덕(知德)에 의해 이루어진다. 둘째, 인간사에 있어 이성의 정직, 강직함을 설정함으로써 이는 정의(正義)에 포함된다. 셋째, 인간사에 있어서 이 이성의 강직함의 설정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인간의 의지는 이성의 강직함에서 나오는 두 가지 방법에 있어서 방해를 받는다.


첫째, 이성의 강직함이 요구하는 것 보다, 어느 일에 대한 쾌락목적에 의해 이끌릴 때, 이 장애는 절제의 덕행에 의해 제거된다. 둘째, 보여지는 사물 그 자체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의지가 이성과 일치되지 않고 벗어난다.  이 같은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강용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사람도 신체를 단련함으로써, 상술한 바 대로, 어려움을 저항하고, 극복하며, 대담하게 장애물을 제거한다.” (IIa IIae qu.123 a.1)


강용의 덕행과 폭력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강용은 선한 행실에서 오는 강인함인데, 신체적 강함보다 훨씬 더 강한 도덕적 강인함입니다. 그래서 성 아네스 같은 어린 여성이 그리스도를 부인(否認)하기 보다는 오히려 희생을 감당할 수 있는 강용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덕행은 위험, 위협과 모든 종류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좋은 행실 가운데 인내하게 만들어 줍니다.


가장 커다란 위험은 죽음의 위험입니다: 그래서 강용의 덕행 이란 중요 행실은 치명(致命)입니다! 초대 교회는 우리에게 많은 놀라운 치명의 사례(事例)를 보여주었습니다만, 오늘날의 가톨릭 신앙 조차도 중국을 포함하여 몇 나라에서 박해를 받고 있고 아직도 치명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성 교회는 이 치명자들을 기리며, 저 치명자들이 천국에서 탁월한 저들의 강용에 대한 보상으로 특별한 왕관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토마스 성인은 강용의 덕행에 대한 두 가지 행위, 즉 공격과 인내의 덕행이 있는 바, 이중 주요 행위는 인내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빨리 공격하는 것보다 꾸준히 견뎌내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치명자들은 최고의 인내심 이라는 표양(表樣)을 보여주었습니다. 악을 악으로써 갚지 않고 선으로써 악을 갚았습니다.

덕행은 올바른 조치에서 존재합니다. 공격과 참고 견디는 데에 있어서 지나침이 있을 수 있는데, 복음서는 우리에게 한 사례를 보여줍니다: 우리 주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적에, 사마리아를 통과했고 한 도시가 주님을 거부했습니다;”그 문제(門弟) 야고보와 요왕이 아뢰되, 우리 등이 하늘을 명하여 써 불이 내려와 저들을 진멸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 돌아보시며 꾸짖어 이르되, 너희가 무슨 심정의 사람인 줄을 모르는 도다. 인자(人子)는 생명을 해하러 오지 아니하고 오직 구하러 왔느니라”하시고 이에 다른 촌(村)으로 함께 가시니라.“(루까9:54-56).절제는 덕행에 있어 필수입니다.

강용의 또 다른 측면은 강한 참을성, 시간이 흘러가며 생기는 인내입니다. 하루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렵지는 않습니다. 오랜 시간을 견디어내는 것이 훨씬 어려운 법입니다. 이는 인내의 특별한 덕행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천국에서의 보상이 약속되어있습니다:”끝까지 항구(恒久)한 자는 이에 구령하리라. “(마테오10:22)

이를 행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힘에 의존해서는 안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에 의존해야 합니다:”나를 견고케 하여 주시는 자, 저 그리스도 안에 나 모든 것을 능히 할 수 있노라 .“(필립피4:13) 그리스도께서 성 바오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성총이 네게 넉넉하니, 대저 성총의 능력은 성총으로 말미암아 견고케 된 인간의 연약한 곳에서 완전히 나타남일새니라.  그런즉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내려오기 위하여 나 즐거이 내 약점을 자랑하리라. 그런고로 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육신의 허약하여짐과 천대받음과 곤궁과 핍박과 궁경(窮境) 중에 스스로 자족하여있느니, 이는 나 허약한 그 때에 오히려 굳센 까닭이니라. “(코린트 후 12:9-10)

그래서 이 같은 도덕적 강인함은 그리스도 성총에 의해 얻는 기도의 열매입니다. 자기 힘에 의존하는 사람은 모든 형태의 악인 폭력, 교만, 고집, 무모함, 자기 중심의 의지, 씁쓸한 열정 등에 쉽게 떨어집니다.


제가 르페브르 대주교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1977년2월이었는데, 신문에서는 그 대주교님을  ‘강철주교’라고 불렀을 당시, 만나본 그 분의 온유함에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인상(印象)을 나의 고해신부에게 전했을 때 그분의 말씀이 “대주교님이 온유(溫柔)하시기 때문에 강하신 것이오. 진정한 강용의 덕행이오. 왜냐하면 그 분은 자신의 개인적 강함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함에 의존했기 때문이오. 자신의 이상(理想)을 변호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변호한 것이오.”


성 교회의 위기 시에 강용이 필요합니다. 특히 성 교회가 항상 해왔던 일에 충실하게 머물고자 하는 자들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악담을 악담으로 갚지 말 것이라. 오히려 그와 반대로 축복해야 할지니. “ (베드로 전 3:9)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서 있는 치명자(致命者)들의 여왕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모습에서 강용의 덕을 봅니다: 베드로 조차 두려워하여 그리스도를 부인했을 때, 모든 종도(宗徒)들이 도망갔을 때, 성모께서는 쏟아지는 맹비난과 그리스도의 고통을 보고 견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항상 주님 곁에서 서 계셨고 온전히 주님을 고통을 나눴습니다. 성모님을 따랐던 유일한 종도가 한 분 계시니, 그 분은 바로 성 요한입니다.

이와 같은 강용의 덕을 얻을 수 있도록,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자로서 남아있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성모님께 간청합시다. 특히, 우리가 죽을 때에 선한 행실 가운데 죽게 끔, 그리하여 우리가 영광의 왕관을 받을 수 있도록 간청합시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 (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


Fortitude


My dear brethren,
Today St Paul exhorts us to “put on therefore, as the elect of God, holy, and beloved, the bowels of mercy, benignity, humility, modesty, patience: bearing with one another, and forgiving one another, if any have a complaint against another: even as the Lord hath forgiven you, so do you also” (Col. 3:12-13 “).


How could we practice these virtues, that make us Christ-like, unless we would suffer from our neighbour some offenses that we would have to bear patiently and forgive? Hence in the Gospel our Lord Jesus Christ tells us that in His field – the Church – there is some cockle, bad weeds, until the end of the world – harvest time – when He will give orders to His angels to separate them. Until then their presence give us occasion to practice patience, perseverance and forgiveness!


Thus God draws good out of evil. St Augustine tells us: “Think not that wicked men are in this world for nothing, or that God doth no good with them. Every wicked man liveth, either to repent, or to exercise the righteous” (In ps. 54, 4). When the ungodly repents – by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 his conversion gives great glory to God; but even if he does not, his presence is an occasion for the good to practice patience and forgiveness. In Heaven, there will be no longer any suffering to bear patiently, nor any offense to forgive: such virtues can only be practiced here below.


Yet they are great virtues that make us truly Christ-like, God-like: “Be ye therefore merciful, as your Father also is merciful” (Lk. 6:36) “But I say to you, Love your enemies: do good to them that hate you: and pray for them that persecute and calumniate you: That you may be the children of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who maketh his sun to rise upon the good, and bad, and raineth upon the just and the unjust. For if you love them that love you, what reward shall you have? do not even the publicans this? And if you salute your brethren only, what do you more? do not also the heathens this? Be you therefore perfect, as also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Mt. 5:44-48)


Now these virtues require a great fortitude, spiritual strength. St Thomas Aquinas teaches that fortitude is one of the four cardinal virtues, thus very important for the spiritual life. He explains that a virtue is a habit that makes a man good by inclining him to good actions: “now man's good is to be in accordance with reason. Wherefore it belongs to human virtue to make his work accord with reason. This happens in three ways: first, by rectifying reason itself [avoiding disorderedly and erroneous thoughts], and this is done by the intellectual virtues; secondly, by establishing the rectitude of reason in human affairs, and this belongs to justice; thirdly, by removing the obstacles to the establishment of this rectitude in human affairs. Now the human will is hindered in two ways from following the rectitude of reason.


First, through being drawn by some object of pleasure to something other than what the rectitude of reason requires; and this obstacle is removed by the virtue of temperance. Secondly, through the will being led away from following that which is in accordance with reason, on account of some difficulty that presents itself. In order to remove this obstacle fortitude of the mind is requisite, whereby to resist the aforesaid difficulty even as a man, by fortitude of body, overcomes and removes bodily obstacles.” (IIa IIae qu.123 a.1)


There is an enormous difference between the virtue of fortitude and violence: fortitude is strength in the service of good; it is moral strength much more than physical strength. Thus a young girl as St Agnes could have the fortitude to suffer martyrdom rather than deny Christ! This virtue makes us persevere in good in spite of dangers, threats, difficulties of all kinds.


The greatest danger is the danger of death: thus the main act of the virtue of fortitude is martyrdom! And the early Church gave us many marvellous examples of martyrs – but even today the Catholic Faith is persecuted in some countries, including China, and there are still martyrs. The Church honours the martyrs, and teaches that they receive a special crown in Heaven for the excellence of their fortitude.


St Thomas teaches that there are two acts of the virtue of fortitude: to attack and to endure, and the main act is to endure. It is more difficult to endure patiently than to make a quick attack. The martyrs give the supreme example of endurance. Not to render evil for evil, but to overcome evil by good!


Now virtue consists in the right measure: there can be excesses in attacking or enduring: the Gospel gives an example: when Our Lord was going to Jerusalem, he went through Samaria and one city refused to receive Him; “and when his disciples James and John had seen this, they said: Lord, wilt thou that we command fire to come down from heaven, and consume them? And turning, he rebuked them, saying: You know not of what spirit you are. The Son of man came not to destroy souls, but to save. And they went into another town” (Lk. 9:54-56)


Moderation is essential to virtue.

One aspect of fortitude is “longanimity”, perseverance through time. To bear with difficulties one day is not too difficult; to bear them for a long time becomes much more difficult: this requires the special virtue of perseverance, to which the Heavenly reward is promised: “he that shall persevere unto the end, he shall be saved” (Mt. 10:22).


To do that, we need to rely not on our human strength, but on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I can do all these things in him who strengtheneth me” (Phil. 4:13) . Christ said to St Paul: “My grace is sufficient for thee; for power is made perfect in infirmity. Gladly therefore will I glory in my infirmities, that the power of Christ may dwell in me. For which cause I please myself in my infirmities, in reproaches, in necessities, in persecutions, in distresses, for Christ. For when I am weak, then am I powerful” (2 Cor. 12:9-10)


Thus this moral strength is a fruit of prayer, by which we obtain the grace of Christ. He who relies on his own strength will quickly fall into many kinds of vices: violence, pride, obstinacy, stubbornness, self-will, bitter zeal, etc. At my very first encounter with Archbishop Lefebvre, in Feb. 1977, at a time when newspapers were speaking of the “steel bishop”, what struck me was his meekness; and when I reported this to my confessor, he said: “he is meek, therefore he is strong [=the true virtue of fortitude]; because he relies not on his own personal strength, but on that of our Lord Jesus Christ; he defends not his own personal ideas, but the teaching of Christ.” In this crisis of the Church there is indeed need of fortitude, especially to bear with its duration, and the unjust criticisms directed to those who want to remain faithful to what the Church has always done. But we should “not render evil for evil, nor railing for railing, but rather a blessing:” (1 Pet. 3:9) 

 
We see this virtue of fortitude in the Blessed Virgin Mary standing at the foot of the Cross, Queen of Martyrs: when even Peter had feared and denied Christ, when all the other apostles had run away, she did not fear to bear the opprobrium and pains of Christ; she was standing near Him, sharing in His Passion to the full – and the only faithful apostle is the one who had followed her, St John.


Let us ask her to obtain that virtue for us, to have the courage to remain faithful in spite of the difficulties; let us ask especially for persevering in good until our death, so that we may receive the crown of glory. Amen.


Fr. F.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