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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 가지 적: 육신, 세속, 악마 (2017-09-1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11




세 가지 적: 육신, 세속, 악마 (2017-09-10)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어느 누구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니라.“(마테오6:24):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두 주인이 있고, 이 두 주인들은 우리 영혼을 차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 한 분은 그리스도요, 다른 하나는 돈을 통해 작용하는 악마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저 전쟁에서 최후의 결정권을 쥐게 될 것입니다. 갈보리 산에서 악마는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사실 악마는 죄와 싸우는 전쟁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속일 수 없음으로 인해 피배하였고, 죄를 이긴 그리스도의 승리는 부활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마에게 완벽한 승리를 거둔 이날은 죽음을 이긴 승리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저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흔히 우리 영혼은 전쟁터입니다. 우리 내부에서 이 두 가지 경향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바오로 성인 말씀하시니, “육체는 영신을 거슬러 욕구하고, 영신은 육욕을 채우지 아니하리라. 그 서로 반대됨은 너희로 하여금 욕구하는 바를 행하지 말게 하기를 위함이니라.“(갈라타5:17) 이 전쟁은 드러난 진리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오는 경험적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을 택해야 합니다. 무관심으로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올라가지 않으면 내려가야 합니다. 영적인 쪽을 택하지 않으면 육신쪽으로 떨어집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정성으로, 사랑으로 섬기지 않으면 결국은 돈과 세속의 사물을 사랑하는 노예가 되어 악마를 섬기게 됩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육신, 세속 그리고 악마라는 세 가지 적이 있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첫 번째 적은 우리 육신인 내부의 적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우리 영혼을 거슬러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런 현상은 천주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만 원죄와 우리 과거 죄의 결과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이것을 죄의 “상처”라고 부릅니다. 각 죄는 세 가지 결과가 있으니, 영혼의 어두움, 이로 인한 벌 그리고 우리 영혼에 생긴 상처입니다. 죄의 첫 번째 결과는 영혼의 어두움입니다. 이것은 성화 은총의 결핍, 마치 빛을 상실함과 같습니다. 이것은 악이 천주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고 창조주보다는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죄 그 자체의 상태입니다. 두 번째는 죄로 인하여 우리가 빚(debt)을, 채무를 초래합니다. 벌은 마땅히 죄인에게 갑니다. 왜냐하면 천주님은 악이 최후의 결정권과 이 악이 퍼지도록 허용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궁극적인 말씀은 항상 천주님께 속할 것입니다. 만약 피조물이 악을 선택하면 죄로 인한 벌을 갚거나, 자기가 스스로 보속으로, 또는 천주님에 의해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의 세 번째 결과는 죄의 상처입니다: 이 죄의 상처는 다시 죄에 떨어지는 악한 경향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사람은 또 다시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경향을 가져서 다시 취하게 됩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두 번째 거짓말이 쉽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세 번째 거짓말을 더 쉽게 하게 되고 그래서 그는 거짓말이라는 악한 특성을 세우게 됩니다. 원죄는 우리의 본질에 상처를 주었고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본질의 경향이 이기적이고, 지나친 쾌락을 추구하며, 무질서한 분노를 일으키고, 우리가 반드시 맞써 싸워야 할 많은 악한 경향으로 기울어집니다.

우리의 온 생애를 통하여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는 내부의 적, 영을 거스르는 우리 육신의 반란을 찾을 수 있습니다. 흔히, 사실상 잘못이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될 때, 우리가 행한 잘못에 대해 남을 탓하는 경향이 있게 됩니다. 오늘 바오로 성인은 이러한 “육신의 행실들”을 묘사합니다: “음행, 부정, 파렴치, 음욕, 우상 숭배, 마법, 원한, 쟁투, 질투, 분노, 당파심, 소란, 분열, 시기, 살인, 술주정, 폭식 등”(갈라타5:19-21)이 육신의 행실입니다. 그리고 성인은 우리를 매우 분명하게 경고(警告)하십니다: ”나 이미 말한 바를 다시 이르노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천주의 나라를 얻지 못하리라.”(갈라타5;21) 이 마지막 말씀들은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게 해주니,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의 육신을 거슬러 싸워야 하고, 이러한 죄의 경향과 죄의 상처에 대해 거슬러 싸워야 합니다. 

어떻게 싸웁니까? 우리 주님께서 “만일 나를 따르고자 하거든, 자기를 끊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  (루까9;23) 하신 것처럼 싸웁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보속과 고행을 하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 생활의 핵심입니다. 모든 성인들의 모범이란 이 위대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고행하지 않았던 성인이 있다면 제게 알려주세요 그러면 말씀드리건대 여러분도 고행없이 천국에 갈 수 있겠지요! 우리가 성인들의 생활을 읽었을 때, 그분들의 고행의 깊이에 대해 오히려 놀라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저 성인들이 육신과 세속과 악마와 싸워 이긴 그 승리를 묵상하게 됩니다. 성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되었고, 그 결과 저 성인들은 죄와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승리 안에서 주님과 일치되었습니다.

두 번째 적은 세상(세속)입니다. 외부적인 물건, 특히 돈과 부, 세상의 영광과 허영, 유행, 성공, 권력, 명성... 이러한 모든 매력을 주는 세상이 두 번째 적입니다. 마치 진정한 행복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이러한 외부 물건에 얼마나 열심히 추구하고 집착하는지요! 그곳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죄의 물결이 흘러나옵니까; 질투, 시기, 사기, 도적질, 강탈, 무절제, 악한 표양 등.... 저들은 이와같은 외부적인 물질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저런 것들은 단지 수단일뿐이지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지나가는 물건이지 영원한 물건이 아닙니다. 저것들은 그걸 소유한 사람에게 유익함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외부적인 물건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건대, 저런 외부적인 물건에 대한 무질서한 탐욕에, 세속의 정신에 맞서서 싸워야만 합니다. 요한 성인은 극명한 경고를 하십니다: ”너희는 세속과 및 세속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지니라. 누 만일 세속을 사랑한다면, 성부께 대한 사랑이 그에게 있지 아니하리라.”(요안 1서2;15) 그리고 야고보 성인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간음하는 자들아, 너희는 이 세속에 대한 애정이란 천주께 대하여 원수됨임을 모르느냐? 그러므로 누구나 이 세속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천주께 대한 원수가 되느니라.”(야고버4;4)

그와는 반대로, 복음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너희가 만일 세속에 속하였더면 세속이 제 것을 사랑할 것이나, 그러나 너희가 세속에 속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희를 세속에서 간선(揀選)한 고로, 이 까닭에 세속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왕15:19) 그래서 성 요한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세속이 만일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는 이를 이상히 여기지 말지니라.“(요안1서3;13)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너희가 인자를 위하여, 사람들에게 미워함과, 손도지름(분리시킴)과, 능욕함과, 너희 이름을 악한 것 같이 도려냄을 받으면 진복자되리니, 저 때에 너희는 즐겨 용약하라. 문득 너희가 천국에서 많은 상을 받으리라. 대개 저들의 조상이 이와 같이 선지자들을 학대하였느니라.“(루까:22-23)

세 번째 적은 악마입니다: ”너희는 근신하고 깨어있을지어다. 대저 이는 너희의 원수 마귀가 마치 포효하는 사자와 같이 잡아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님이니라.“(베드로 전5:8) “사탄'이라는 그 이름은 히브리어로 “적, 원수(adversary)”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흔히 오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로 인하여 변명을 하듯이 악마를 모든 악의 탓이라 비난하고 전가합니다. 비록 악마가 어떤 악, 특히 큰 악에 있어서 분명한 원인이긴 하지만, 유일한 원인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죄들도 있으니, 특히 육신의 죄가 그렇습니다. 우리의 게으름 등에 대해 악마를 탓하는 것은 제 정신이 아닌 것입니다. 악마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육신의 죄에 빠지게끔 충동질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악마 자체는 순수 영이고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죄에 대해 단지 경멸할 뿐입니다.

악마에 의해 주입되는 전형적인 죄들은 파괴를 위한 파괴가 포함된 이러한 죄들, 이를테면 혁명, 성 전환과 같은 절단(切斷)으로 하여금 개인의 유익을 절대적으로 갖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마약, 현대음악, 미신, 점쟁이, 뉴에이지 등이 포함된 악을 흔히 접하게 됩니다. 또한 프리메이슨에 많이 포함된 악마를 보게 되니, 이는 그의 반란인 “나는 섬기지 않겠다”(에레미야2;20)의 정신인 것입니다. 사람 위에 있는 어떠한 법, 특히 자연법을 포함하여 천주님에 관한 모든 계명을 저들이 거부함에 있어서, 천주님을 거역하는 악마의 시끄러운 반란의 메아리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회적 왕권을 거부하는 현대국가들의 전체적인 반란은 프리메이슨을 통한 이러한 악마의 영향력이 원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이 세 가지 적과 맞서서 치열한 전쟁을 해야합니다. “이 세상의 인간생활은 전쟁이라.”(욥7:1) 그러면 어떻게 싸워야만 하나요? 베드로 성인은 우리가 악마와에 저항하여 싸워야한다고 가르칩니다. “너희는 신앙을 (굳세게 하여)  저를 대적할지니, 대저 너희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이 같은 고난을 당하는 것을 앎이니라.” (베드로 전5:9) 진정으로 요한 성인은 말씀하십니다: ”세속을 이기는 승리는 이 우리의 신앙이니라.“(요안1서5:4)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옵니까? 먼저 충실함에 대한 보상으로서 우리에게 약속된 영적이고도 영원한  물건 속으로 우리의 눈을 열음으로써, 이것이 저급한 (세속) 것으로부터 우리 마음을 떼어내고 천국 물건에 우리 마음을 애착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성심축일의 영성체 후 미사경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여 네 거룩하신 제찬으로 인하야 우리 안에 신성한 열심을 갖다 주시며 또한 네 지극히 사랑하온 성심의 닮을 맛본 우리로 하여금 세속 사물을 경천히 여기고 천상 사물을 사랑할줄을 알게 하소서.“ 이 영성체 후 축문은 새미사에서는 억압(抑壓)되고 있음을 주목(注目)하십시오. 베드로 성인은 말씀하십니다. “신덕(信德)으로 우리 마음을 조촐하게 하라.“(종도행전15:9) 신덕이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하니, 왜냐하면 이 신앙이 영적인 물건, 천국에 있는 깨끗한 물건에 향하도록 우리를 끌어 올립니다. “마음이 조촐한 이는 진복자로다. 저들이 천주를 뵈올 것이요”(마테오5:8)

또한 신덕은 우리의 마음을 조촐(깨끗)하게 하니, 왜냐하면 신덕이 죄로 인한 영원한 벌을 보여주기 때문이요, 그래서 강력하게 죄를 피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가 유혹에 저항하게끔 도와줄 정도로 강력합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그 손을 베어 버리라. 너 병신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멸치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나으리니, 거기는 그 독충이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리라. 네 발이 만일 너를 범죄케 하거든 그 발을 베어 버리라. 절면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꺼지지 아니하는 불지옥에 빠지는 것보다 더 나으리니, 거기서 그 독충이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리라. 또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그 눈을 뻬어 버리라. 한 눈을 가지고 천주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불지옥에 빠지는 것보다 더 나으리리, 거기는 그 독충이 죽지 아니하고 불이 꺼지지도 아니하리라.“(말구9:42-47) 신덕은 이 세상의 물건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헛된 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보천하를 다 얻을지라도 제 영혼에 해를 받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테오16:26) 이것과 다른 복음 말씀들을 암기하는 것이 유익하니, 그런 말씀들은 유혹(誘惑)을 당할 때에 육신과 세속과 악마에 저항하도록 우리를 강화시켜줍니다.

또한 신앙(신덕)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하게 합니다: 당장 우리가 좋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돕도록 간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도움을 외쳐야, 도와달라는 외침 안에서 우리가 보호됩니다. 그러면 좋으신 주님은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도우실 것이고 오로지 주님께 충실하게 남게 하실 것입니다. 세속적인 유익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중재해달라고 성모님과 모든 성인들에게 육신과 세속과 악마를 이긴 저분들의 승리 안에서 그분들을 닮게 해달라고 요청(要請)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罪)를 거슬러 싸움에 있어서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는 저항(抵抗)하지 아니하였습니다.“(헤브레야12:4)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구원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으니, 그것을 주님이 참으로 원하셨던 겁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우리더러 기도하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를 유감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마테오6:13) 이 기도문은 “우리가 유감에 굴복되지 않게 하시고,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함과 같이 영어로 번역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안으로 빠지지 않게”라는 뜻은 여기서 “ ~로 부터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신앙 안에서 굳세게 싸울뿐만 아니라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신덕에는 두 가지 행실이 있다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가르칩니다: 첫째는 믿음이라는 내적행위이니, 교회를 통하여 천주께서 가르치신 것으로서, 계시된 진리에 대해 우리의 지성을 함께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저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외적인 행위입니다. 성신강림절 종도들을 보세요: 종도들은 성신으로 충만하였고, 그리고 나서 그 신앙을 두려움없이 고백하여 살아계신 천주님의 성자요, 세상의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전하였습니다.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저런 용기가 필요한데 특히 세속에 저항하여 싸울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회적 왕권을 위해 싸울 때 용기가 필요합니다. 너무나 자주 가톨릭 신자들이  친구들이나 이웃, 심지어 더욱 더 적들에게 저 신앙을고백하는 걸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견진성사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었고 두려움 없이 우리의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주님의 왕국이 분명히 전진해 나가게 합니다.

교회 위기에 있어서 한 가지 중요한 면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이단자들이 부인하는 (가톨릭) 신앙의 관점에 대해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침묵하기를 선호합니다. 루터의 500주년은 우리 시대에 악한 표양을 보여주는 참으로 많은 저러한 타협과 침묵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왜냐하면 (개신교에 대한) 이러한 침묵과 타협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또한 개신교인들에게 참 신앙을 주기보다는 어둠이라는 오류 속에 불쌍한 개신교인들이 있게끔 그대로 방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중대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결코 비난하지 않기 위하여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데 결코 그렇지 않으니 오히려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주님은 저 목적을 위해, 우리 죄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마테오1:21) 공짜로 받은 것이니 공짜로 줘야 됩니다.(마테오10:8) 그러므로 우리 차례가 되어 예수님과 같은 마음이 되어 우리 이웃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성인 이르시길, “사랑으로 말미암은 신앙“(갈라타5:6) 이라 했습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마음에 빛을 주는 것이요, 사랑으로 (타인의) 그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신앙은 죽은 것이고, “아무 것도 아닌“(코린토 전13:2)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믿음은 산을 움직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오로 성인은 사랑을 성신의 첫 번째 열매로 놓습니다. “성신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자애, 인자, 충실함, 유화, 공순, 절제, 정결이니, 이러한 것들을 거스르는 법률은 없느니라.“(갈라타5:22)

저 영적인 전쟁은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만으로는 이길 수 없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면 이길 수 있습니다. “나 너희게 이 말을 함은 너희로 하여금 나를 의탁하여 평화함을 얻게 코자 함이니, 너희가 세상에서 군난을 당할지라도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왕16:33) 그래서 바오로 성인은 이르시길,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신 자를 인하여 승리하리라.“(로마8: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천주께 감사하사이다.“(코린토 전15:57) “저들은 고양(羔羊-어린 양) 의 피로 말미암아, 또한 자기 증거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쳐이기었으며, 죽기에 이르도록 그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느니라.”(묵시록12:11)

바오로 성인 말씀이신 “그럼으로 우리는 증인들의 구름 (수 많은 증인) 으로 인하여 사방으로 둘러싸이었으니, 우리는 우리를 무겁게 하는 모든 것과 우리를 옮아매는 죄를 벗어버릴지니라.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싸움을 항구히 행할 것이며“(헤브레야12:1)하는 것처럼 우리는 저 영적인 전쟁에서 성인들의 모범과 기도로 인하여 많은 용기를 얻습니다. 성인들의 신덕과 사랑으로 성인들은 많은 영혼들을 개종시켰으며, 참으로 많은 장애물들, 내부에서 오는 유혹을 이겼습니다. 육신으로부터 오는 유혹을 이기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가시덤풀에 던진 프란치스코 성인을 보세요. 성인들은 세속으로부터 오는 엄청난 압력을 이겼습니다. 참 신앙을 배신하느니 차라리 목 베임을 받아 죽으려했던 영국의 재상(宰相)인 토마스 모어 성인을 보세요. 성인들은 악마를 이겼습니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Curé of Ars ) 성인은 보세요. 이 성인은 악마로 부터 자유로게 해준 모든 영혼들 때문에 악마에 의해 괴롭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매번 성인은 승리하였고 수천명의 영혼들을 악마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구원의 길로 돌려놨습니다.

저 영적인 전쟁에서 최고의 모범과 가장 강력한 도움은 복되신 동정 마리의 모범이요 도우심입니다. 성모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매우 특별한 특권으로 인한 무염시잉모태로서 하자 없으십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성모님은 성신의 은총에 완전히 협력함으로써 성모님 온 생애를 통하여 완벽하게 죄 없이, 결코 작은 소죄조차도 죄 짓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입니다. 성모님의 몸은 천국으로 옮겨졌고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성신의 은총에 충실하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충직하게 남아있도록, 우리 영혼에 저 성신을 부어주실(로마5:5) 사랑으로 가득찬 모습으로 우리를 도우실 큰 권능을 받고 계십니다. 홀로페르네스(Holofernes)의 머리를 자른 유딧(Judith)처럼, 성모님은 옛 뱀의 머리를 으깨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치르는 군대 행렬처럼 강합니다. 실제로 아가(雅歌Canticle)는 노래하길,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가6;9)  “태양을 몸에 두른 여인이 있어, 그 발 밑에는 달이 있고, 머리에는 열 두 개의 별로 된 관(冠)이 있더라.“(묵시록12:1)을 인식하니, 성모님은 구세주의 모친이요, 왜냐하면 성모님의 아들은 메시아로서 선언된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영2, 잠언2:9절과 묵시록 12:5절 비교하세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용기(勇氣)를 가지고 타협하지 않고 죄와 싸우세요. 인내를 가지고, 특히 사랑의 인내로써 성인들의 덕행을 실천하고 그분들의 행실을 따르고 그분들의 보호 아래 있도록 하세요 그리하면 우리가 바오로 성인처럼 선한 싸움을 마친 후에(티모테오 전6:12) 천국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