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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비의 모친; 죄인들의 영혼구령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쳐라(08-15)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8-15




자비의 모친; 죄인들의 영혼구령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쳐라-성모몽소승천(2017-08-15)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성모몽소승천축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대한 최종 보상, 성신께 대한 성모님의 완전한 복종에 대한 완전한 보상, 하자 없는 성심에 대한 보상을 기념합니다. 천주께서는 공로와 보상 두 개를 주시니, 첫째는 공로요, 그리고서 보상을 주십니다. 만약 우리가 상을 받고자 원한다면 우리는 공로가 될 일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천주께서는 겸손한 이들에게 그분의 성총을 주십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천주님의 그 성총에 협력한 지극히 아름다운 모범이며 그 놀라운 결실을 보여줍니다.

만약 우리가 천주님의 섭리를 생각한다면, 천주께서 우리로부터 요구하시는 주요한 일은 무엇이며 참으로 탁월하게 보상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랑에 관한 일, 바오로 성인의 말씀에 따른 “사랑으로 활동하는 신앙”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리스도 예수 안에 가치 있는 것은 할손례나 비할손례가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 말미암아 활동하는 신앙이니라.“(갈라타5:6) 그러나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 가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의 최정점은 무엇인가요? 다음은 르페브르 대주교님의 표현입니다: 자비는 사랑의 최정점이다! 그리고 이 자비는 먼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이고, 그리고 나서 우리가 주님과 함께 행동하길 요청합니다. “이러므로 너희 성부 인자(仁慈)하심과 같이 너희도 인자하여라.“(루까6:36) 그리고 바오로 성인은:”너희는 겸손과 양순함과 또한 인내를 다하여 서로 사랑함으로써 참을 것이며“(에페소4:32)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다른 어느 사람보다 이점을 이해하셨고 행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자비의 모친입니다.

자비는 본질적으로 연민이요, 불행에 빠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도움입니다. 두 가지 종류의 불행이 있습니다. 물질적 불행과 영적 불행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의 자비가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자비와 영적으로 돕는 자비입니다. 서로간에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여 완성을 이룹니다.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만 취하는 것은 가톨릭인이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인 자비의 행동만을 취하고 영적인 자비의 행위를 버리거나, 또는 물질적인 행위는 배제하고 영적인 자비 행위만을 행하는 것은 더 이상 자비의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물질적 자비인) 이런 자비의 행위는 천주님의 사랑으로부터 먼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박애정신에 불과하고 흔히 매우 부족함을 드러내는데, 설령 많은 돈으로 재정 지원을 한다고 해도 부족한 것입니다. 병자들에게 안락사를 밀어 부치려는 노력을 행하는 현대 세상에서 이런 점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살이 지옥으로 가는 직접적인 길임을 고려해 볼 때, 안락사는 인간이 병자들에게 밀어 부치는 최악의 일입니다! 환자의 뜻에 따른다 할지라도 안락사는 그 병자를 지옥으로 몰고 갑니다. 병자의 뜻을 반하여 안락사가 있더라도 이는 매우 분명한 살인입니다. 그 어느 것도 참된 가톨릭의 자비는 아닙니다!

두 가지 불행 가운데, 가장 큰 불행은 분명히 영적인 불행, 즉, 죄의 불행이며 죄의 결과로서 초래되는 불행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커다란 자비는 영적인 도움이 되는 자비, 우리의 영적인 불행을 보고 치료를 제공하는 자비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반대하고 말하길: 만약 천주님이 게시다면 왜 이세상에 악이 이렇게도 많은 것인가? 합니다. 진리는 바로 천주님의 일은 완벽하며 천주님이 악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악에 대한 치료책을 주시는 분입니다. 악의 원인은 죄이니, 즉, 창조주에 대항한 피조물의 반란, 몇몇 피조물들이 자기들 창조주에 대해서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이 악이요, 모든 다른 악의 원인입니다. 천주님은 권능이 넘치기에 저 악을 실제로 예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우리를 자유로이 창조하시지 우리의 자유를 파괴하고자 하시질 않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일으킨 악에 대해 우리의 탓이 있을 뿐 입니다. 우리의 자유를 사용하여 일으킨 우리의 악에 대해 우리의 창조주를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실제로 모든 물리적인 피조물들을 생각해보면, 그 모든 피조물들은 천주님이 저들에게 설정해놓으신 법칙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모든 행성이나 별들은 천주께서 저들에게 설정해놓으신 물리학의 법칙을 완벽하게 따르고, 심지어 거대한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입자도 천주께서 저들에게 설정하신 물리학의 법칙을 완벽하게 따릅니다. 그러나 저들 모두는 필요하니까 따릅니다. 저들은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천주님은 영적인 피조물인 천신과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저들에게 분명히 자유를 주셨으니, 천신과 인간들은 사랑으로 인하여 (의지에 의해) 천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지 (설정된) 필요의 법칙으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점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천주님은 천주님의 계명에 불순종하도록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아니라 오히려 사랑으로 인해 천주님의 계명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는 참으로 아름답고 지혜로우나 만약 인간이 천주님의 계명을 파괴한다면 이는 오로지 자기 탓인 것이며 그러면 자신의 불순명에 대한 그 결과를 겪어야 합니다.

천주님은 악 위에 계시니, 선은 존재의 어떤 가득함이고 완벽함이지만, 악은 존재의 어떤 부족함이고 결핍입니다. 선의 결핍(缺乏)입니다. 그래서 있는 것이 존재의 없음이나 결핍보다는 우위에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선이 악보다 위에 있는 것이고, 원인이 결과를 따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의1차 원인은 악에서 오는 1차 책임보다는 위에 있는 것입니다. 천주님은 모든 선의 1차 원인입니다. 천주님이 악에 대해 1차 책임이 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악에 대한 1차 책임은 선의 1차 원인보다는 아래에 있습니다. 악에 대한 1차 책임은 천주께 대한 피조물의 복종을 거부할 때 만들어진 의지이니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여기서 성육신과 구원의 전체적인 목적을 알게 됩니다: 천주님의 자비, 우리의 죄에 대한, 우리의 악에 대한 치료를 제공함으로써 천주님 사랑의 완전함인 그분의 자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천주님은 죄를 예방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창조 안에서 보여주신 천주님의 풍성함은 경이롭습니다 그러나 천주님의 자비(慈悲)는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당신의 자비는 생명보다 더 낫기 때문에, 나의 입술은 당신을 찬양하나이다.“(성영62:4) ”당신의 자비가 하늘을 닿기까지 크오며“(성영107:5) 천주님은 악으로부터 선을 끌어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악으로부터 천주님의 자비를 분명히 보여주는 위대한 선을 이끌어냅니다. 천주님은 죄에 빠진 우리, 저 죄의 결과에 빠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천국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악한 의지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실 때조차 우리를 자유롭게 창조하신 천주님은 우리의 자유를 파괴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천주님이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고, 천주님보다 사랑스런 다른 피조물을 멀리하게 하여서, 우리의 자유에 폭력을 쓰지 않고 피조물보다 천주님을 더 사랑하게끔 우리 마음을 돌리실까요?

천주님은 천주 사랑의 정도로서 우리를 감동되게 함으로써 내부로부터, 그리고 그것 없이도 작용하게 하시니, 천주님은 우리 모두 각자를 너무나 돌보사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의 빚을 속량하기 위하여 천주님의 독생성자를 이 땅에 내려 보내실 정도요, 이는 참으로 지극히 경탄할만한 것이고 경이로운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천주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당신 독생성자를 주시기까지 하사, 무릇 저를 믿는 자로 하여금 멸망치 아니하고 오직 영생을 얻게 하셨으니“(요왕3:16) 그리고 성 요한은 놀랍니다:”우리에게 대한 천주의 사랑은 천주 우리를 당신 독생성자로 인하여 살리시고자 저를 세상에 보내신 여기에 나타났느니라. 사랑이란 이것이니라. 곧 우리가 천주를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오직 천주 우리를 (먼저) 사랑하사 당신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한 속제(贖祭)로 보내신 것이니라.”(요안1서4:9-10) 그리고 바오로 성인도 놀랍니다;”천주께서는 우리들이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하셨느니라.“(로마5:8-9) “누가 그 벗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면 이에게서 더 큰 사랑은 없느니라.“(요왕15:13) 만약 사람이 자기에 대한 천주님의 저 극진한 사랑을 멸시한다면, 그러면 그는 진정으로 지옥에 떨어지기 합당한 것이며, 지옥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내가 내 포도밭 (나의 백성들)을 위하여 더 무엇이 할 것이 있으니, 내가 거기에 만들어 놓지 않았더뇨?“(이사야5:4)

천주님이 죄인의 눈을 열게 하실 때, 죄인은 자기에게 행하신 천주님의 놀라운 사랑, 자신의 불행에 대해 이 지극히 관대한 자비를 보게 되고 그러면 그는 감동이 되어 참으로 좋으신 주님을 상처 입혔던 것에 대한 통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죄를 혐오하여 사랑하는 창조주이자 구세주께 통회의 마음으로 돌아섭니다.

이러한 천주님의 자비 안에서, 우리가 집중하여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중심적인 부분입니다. 특히 희생제사는 흠숭(欽崇)의 최고 행위, 완벽한 경배, 창조주를 향한 모든 인간 및 심지어 모든 창조에 대한 감사의 행위, 창조주께로 피조물들이 돌아감으로써 세상의 모든 죄보다는 천주께 기쁨을 더 드리게 함이요, 또한 이는 본질적으로 속죄의 행위이니, 죄 지은 인류의 빚을 갚는, 심지어 갚아야 할 그 이상의 천주 정의에게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님의 정의는 천주님의 자비에 반대되는 것도 아니고 천주님의 자비는 천주 정의에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주님의 정의와 자비는 이 거룩한 희생제사 안에서 지극히 놀라울 정도로 일치되어있습니다.

천주님은 어떠한 배상을 요구함 없이 죄의 빚을 떨어낼 수 있으나, 그러나 그러면 (이에 대한 배상이 없다면) 천주님의 정의는 충족되지 않을 것입니다. 천주께서는 이것을 선택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독생성자를 보내시어 저 빚을 갚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할 일이 없는 건가요?  개신교인들은 우리 주님께서 행하신 것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천주께서 우리에게 자비롭지만 그러나 우리가 우리 이웃에게 자비로워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십니다:”용서하라. 곧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 또한 너희 죄를 용서하시리니, 대저 너희가 만일 용서치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도 너희 죄를 용서치 않으시리라.“(말구11:25-26)

분명히 천주께서는 죄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에, 천주께서는 우리가 훌륭한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참 선(善)이란 죄와 어울려 호흡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와 동시에 죄를 계속하여 지을 수 없고 그러면서 천주님으로부터 자비를 얻은 척 할 수 없습니다. 루터는 주장하길, 죄의 저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치료하기 보다는 죄에 빠진 우리를 그대로 둔다면 사람은 의로워질 수 있으면서 그러면서 죄인은 불합리한 자라 주장하니 진정으로 천주님의 선하심에 반대됩니다. 사랑의 극치, 선의 극치는 자비 안에 있기 때문에, 천주께서는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길 원하십니다.
 
가장 위대한 자비는 구속의 희생제물이라는 완벽한 희생제물로서 자신을 제헌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웃에 대한 자비가 우리에서 요구될 것이니, 우리 역시 죄에 대한 배상을 함으로써 우리 이웃의 구속을 위하여 저 희생제사에 참여하게 되나니, 왜냐하면 우리 및 우리 이웃의 죄로 인함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성심 및 하자 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완전한 신심을 가집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성심께서 성 마르가리트 마리에게 요청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성모님이 파티마에서 요청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그리고 세상의 죄에 대한 배상을 위해 희생을 바쳐야 합니다.

천주께서는 조촐함을 사랑하십니다. 사람이 죄가 없으면 없을수록, 이웃을 위해 배상과 희생을 더 바쳐 은총을 얻습니다. 천주께서는 고통 받는 무죄한 자를 위해 압도적으로 보상하십니다. 성인들의 삶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를 보세요. 이분은 대죄를 결코 범하지 않았고, (그 당시에는 진통제 없이) 결핵을 앓으면서 참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말씀하시길, “나는 사람이 참으로 많은 고통을 겪는 걸 몰랐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희생과 일치하여 충직하게 드려진 그 성녀의 고통으로 인하여 도움을 받은 수천의 수백만의 영혼들을 보세요! 오상의 빠뜨레 비오 신부님을 보세요 그리고 우리 주님의 수난의 고통 속에 참여한 비오 신부님이 나눈 고통을 통하여 은총을 얻은 수백만의 영혼들을 보세요.

특히 모든 성인들 가운데,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지극히 경이로운 모범에서 나타납니다. 성모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출중한 성총으로 인하여 죄 한 점 없으시니, 성모님의 무염시잉모태로부터 죄가 전혀 없으시고 생애를 통하여 충직함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자 없는 성모성심입니다. 티 없이 조촐하신 동정녀이신 성모님은 세상으로부터 숨어서 사셨지만, 예수님의 수난시기에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성모님은 십자가 아래에서 계신 첫 번째 분이면서 성 요한과 거룩한 여인들을 이끄십니다.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성모님은 주님과 함께 자신을 제헌하면서 자비의 모친이 되셨습니다. 성모님은 완벽히 하자 없는 존재이기에 자신을 위해 수난을 받지 아니하고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위해 수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께는 “그와 대등한 돕는 이“(창세기2:18)인 새로운 이브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옛 교리여서, 2세기 당시에 분명히 성 이레네우스(St Irenaeus)에 의해 밝혀진 사실로서, 이 성인의 스승은 성 폴리캅(St Polycarp)이었는데 성 폴리캅은 십자가 아래에서 마리아와 함께 있었던 성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위해 성총을 얻으신 이후 성모님은 이를 분배하실 수 있습니다. 성모님이야말로 “여러 가지 특은을 관리하는“ 최고 관리자, 천주님 성총의 관리자이신 자비의 모친입니다.(베드로 전4:10) 

우리의 차례가 되어 우리는 성모님을 닮아야 되니, 성 베드로 이르시되, “각각 그 받은 바 특은의 여하를 따라 서로 돌아보아 줄 것이니, 이리하여 써 천주의 여러 가지 특은을 옳게 관리하는 자가 될지어다.     “(베드로 전4:10) 천주님의 성심을 거스르는 공격에 대한 배상을 하기 위하여,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께 배상하기 위하여 파티마 성모님의 요청을 실현할 때, 먼저 우리 죄에 대한 배상으로 우리 자신 및 우리 이웃을 위해, 그를 위해 자비를 얻도록 서로를 돌보도록 행합니다. 현대세상의 엄청난 양의 죄를 생각할 때 많은 열심한 영혼이 더 필요로 하고, 배상을 더 열심히 해야 하며, 천주님을 참으로 기쁘게 하는 저러한 자비를 열심히 실천해야만 합니다. 천주님은 이러한 영혼들에게 그분의 성총을 분명히 주시고자 기다리십니다. 주님은 묻습니다: 배상을 하는 관대한 영혼들에게 참으로 많이 요청하였는데,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합시다: 천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파괴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니, 아브라함이 기도합니다. “그 읍내에 의인이 50명이 있어도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안에 있는 50명을 보아, 차라리 그곳을 용서하려 하지 않으시나이까?“(창세기18:24)  “야훼께서 가라사대 <소돔 그 읍내에 의인 10명을 만날 수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 곳을 죄다 용서하리라>“(창세기18:26) 아브라함은 계속 간청합니다: “굽어보소서. 나는 먼지와 재이오나 감히 주께 사뢰오니, 혹시 의인 50명에서 다섯이 모자라면, 이 다섯으로 말미암아 그 읍을 죄다 멸하시겠나이까? 해서 야훼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마흔 다섯을 만난다면 멸하지 않겠노라>“(창세기18:27-28)  “그는 또 한번 야훼께 아뢰어 가로되, 만약 40명이 있다면… 오직 30명만 있다면….오직 20명만이라도 있다면 멸하지 말라 하니, 매번 야훼 말씀하시되,<그 20명을 보아서라도 멸하지 않겠노라>“(창세기18:31)

그리고 아브라함은 한 번 더 기도합니다: 주여, 아뢰오니 노여워 마옵소서. 한 번 더 여쭈오니, 거기에 의인 10명만 만나신다면 어찌하오리오? 하니 마침내 가라사대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멸하지 않겠노라>“(창세기18:32) 아브라함은 더 이상 감히 요구하질 못하였으니, 왜냐하면 만약 진정으로 그곳에 많은 의인이 없다면, 그 읍내는 진정으로 파괴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천주께서는 한 명의 의인인 롯 (Lot )과 그의 가족을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로부터 구하려고 두 천신을 보냈습니다.

수백만 건의 낙태와 음란의 더러운 부패와 탐욕, 교만, 그리고 신성모독이 행해지는 오늘날의 이 세상은 엄청난 징벌이 마땅하니, 그리하여 천주님은 그분의 모친을 통하여 관대한 영혼들에게 죄인들의 영혼구령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천주님은 소수의 관대한 영혼들, 이를테면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주님 행하심과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님이 하신 것처럼 타인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많은 이들을 남기고 용서하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초연하게 무관심을 가지고 아무런 반응도 없어야 할까요? 우리 자신을 자비롭게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천주께서는 회개에 대한 풍성한 은총을 많은 이들에게 주시는 것이고, 자비를 실천하는 이들 자비로운 영혼들에게는 더욱더 크나큰 거룩함이라는 풍성한 은총을 천주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비의 모친이신 성모님의 거룩함이요, 오늘 성모몽소승천에 의하여 참으로 탁월하게 영원히 보상받은 것입니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