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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체 안에 참으로 계시는 예수 - 예수성심 후 주일(2015-06-1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6-18




성체 안에 참으로 계시는 예수 - 예수성심 후 주일(2015-06-14)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예수성심의 경이로움은 지극히 복된 성사입니다. 이것은 “예수성체성심”을 기리는 미사의 동기이기도 합니다.  이는 참 종교에만 있는 유일한 것으로서, 그 어느 이교도 종교에도 없는, 이슬람, 불교, 힌두교에도 없거니와 그 어느 종교에서 이와 유사한 것이 없습니다. 더욱이, 대부분 이단들, 특히 개신교들은 성체를 왜곡하거니와 성체의 실제현존(實際現存)을 믿지 않습니다. 이것은 유일하게 가톨릭교에만 진실로 있는 것이니, 이는 가톨릭교회란 천주께서 제정하신 표시인 것입니다. 오직 천주 홀로 이와 같은 놀라운 경이로움을 생각하셨고 고안하실 수 있었습니다.

(신학의 완전한 결정체인) 신학대전에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천주께서 더 나은 세상을 조성하실 수 있었는가? 하고 묻습니다. 성인은 대답하시길, 천주 전능하시기에, 그리고 어느 조성된 사물이란 제약이 있기 때문에 천주께서 사물을 아무리 좋게 조성하더라도 천주님은 이 보다 더 나은 사물을 조성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 토마스 설명하시길, 저들이 분명히 천주에 의해 조성된 것만큼, 천주께서 열등하게 지은 어떤 사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천주께서는 성 육신보다 더 나은 어떤 사물을 조성할 수 없었으니,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참 천주이자 참 사람이시기 때문이요, 천주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위결합, 즉, 천주말씀과 함께하는 인성의 결합보다는 천주님과 함께하는 결합이 더 위대합니다. 이와 같이, “천주모친”보다 더 위대한 모성은 없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천주의 모친”입니다. (일반적인) 어머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위대한 아들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성체보다 더 위대한 선물이 없으니, 왜냐하면 이 성체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피이며, 영혼과 천주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사 축일을 기리는 성무일도 조과(朝課)에서 토마스 성인께서는 구약에서 모세가 말씀하시는 것을 인용합니다:”또 우리의 천주 야훼를 우리가 부를 때마다 몸소 가까이 하시듯이 이렇게 가까이 하시는 신들을 모시는 백성(百姓)이 또 누가 있느뇨?“(신명기 4:7) 천주께서 저들에게 만나를 주신 구약에서의 사실이 이미 진실이라면, 신약에서는 이것이야 말로 그 얼마나 진실인가요? 어떤 이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천주께서 모든 곳에 계시니 어찌 그럴 수 있겠어? 영(靈)은 그가 행하는 곳에 있습니다. 천주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지탱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행하시기 때문에 그 분께서는 모든 곳에 다 계십니다. 천주님이 사물을 조성하지 않고 존재 가운데 이 사물를 지탱하지 않는 한, 그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주님은 지옥에도 조차 존재하고 악마의 존재를 지탱하고 있으며, 그 분의 단호한 정의(正義)에 저들을 굴복시킵니다. 그 분의 모든 일에 있어서 천주님의 일반적인 현존은 무한성의 현존입니다. 그러나 천주님 당신께서 더 일을 더 행하시는 곳에, 그 분의 일이 더 위대한 그 곳에 더 현존해 계십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분을 사랑하는 이들의 영혼 속에 천주님의 특별한 현존이 있는 것입니다. 토마스 성인이 설명하듯이, 실제로 천주님은 경이로운 방법으로 이러한 영혼들을 성화(聖化)시킵니다. 저들을 주님의 자녀와 친구로서 만들며, 이들 영혼들을 거룩하게 함이니, 이 성화시키는 은총(恩寵)은 모든 창조보다 더 위대한 작업입니다. 그래서 이들 영혼 안에 더 작용하시는 성 삼위일체는 이들에게 더 현존하십니다. 그것은 은총의 현존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천주님의 유일한 현존, 천주님 말씀의 현존,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일체의 제 2위격,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 있습니다. 이는 천주님과 아들 성자의 직접적인 결합이기에 그 위격의 결합은 거룩한 삼위일체의 가장 숭고한 작업이며 그래서 이것은 천주님의 유일하고도 숭고한 현존, 천주성자의 위격현존에 일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거룩한 성체 안에서 찾는 현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와 같은 일들을 압니까?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단순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피라.…이것은 내 피의 잔이라.”그래서 축성(祝聖) 이후에, 어느 사람이 이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 “이것은 주님의 몸이요, 이것은 그 분의 피라”이라는 그 이상의 참된 답변을 줄 수가 없습니다. 성 교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의 진리를 믿어왔고 이를 방어(防禦)해왔습니다. 개신교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비워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 몸이라”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개신교인들은 “이는 단지 그 분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주님은 가버나움의 시나고그(유대교 회당)에서 말씀하셨습니다:”나는 하늘로 조차 내려온 생활한 (살아있는) 떡이로다. 누 만일 이 떡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요, 또 세인(世人)을 살리기 위하여 내가 줄 바, 떡은 곧 내 살이니라.“(요왕6:51-52)

개신교인들의 반응이란, 유대인들의 반응과 매우 똑같습니다,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써 먹게 하리오? 이러므로 예수 저들에게 가라사대, 나 진실히 진실히 너희에게 이로노니, 너희가 인자(人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그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요.“(요왕6:53-54) 주님의 몸을 먹고 그 분의 성혈(聖血)을 마신다는 (그에 대한 반응의) 소리는 유대인이나 개신교인들에게 진실로 너무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시면서 주장하시길:”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나 또한 끝 날에 저를 부활케 하리니.“(요왕6:55)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에게도 놀랄만한 보상, 영원한 생명이 있을 것이라는 이러한 말씀으로 그 분께서는 우리를 끌어드리고 그 분의 제안을 받아드리도록 당기십니다. 그러한 말씀으로써, 예수님은 천주로서 진실로 말씀하시니, 왜냐하면 천주 홀로 만이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내 살은 진짓 먹을 것이요, 내 피는 진짓 마실 것이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게 거하고 나도 저에게 거하며..“(요왕6:51-57) 예수님의 이 모든 말씀은 매우 분명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음식은 진실로 “주님의 몸과 피“이고 주님의 영혼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살아계신 몸과 성혈이니, 해서 영혼에 의해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천주성과도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 “말씀이 사람이 되신”것이기 때문입니다.(요왕1:14)

  “이후부터 그 문제(門弟) 중에 물러가는 자 많아, 곧 예수와 한가지로 다니지 아니하더라. 이러므로 예수 십이 종도에게 가라사대, 너희도 물러가고자 하느냐? 시몬 베드로 대답하되, 주 영생의 말씀을 가지셨으니, 우리 등이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요, 천주 성자이심을 우리 등이 이미 믿고 알았나이다.“(요왕6:67-7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분이 말씀하신 것을 행할 권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즉, 빵을 많이 만들어 내고 다른 모든 선행된 기적으로써 이를 증명하였습니다:”예수 손을 펴사 저를 만지시며 이르시되, 나 하고자 하니, 조촐(깨끗)하여지라, 하시매 그 나창(癩瘡-나병)이 즉각에 조촐하여진지라.“(마테오8:3) 또는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걸어 다녀라 하시니 그 사람이 즉시 나아 제 평상을 가지고 걸어 다니니.”(요왕5:8-9) 또는 ”예수 명하여 가라사대, 보라, 네 신덕이 너를 낫게 하였도다.하시니, 그 소경이 즉각에 보고 천주를 찬송하여 예수를 따르니, 모든 백성은 이를 보고 또한 천주께 영광을 드리더라.“(루까18:42-4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물이 조성되게 한 천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 분께서 말씀하신 것을 행할 권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는 내 몸이라”하셨을 때, 그 분의 몸으로 변화되기 이전의 빵이었던 것이고, 주님이 “이것은 내 피의 잔이라”라고 하셨을 때에는 그 분의 성혈로 변화되기 이전의 성작 안에 있는 포도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몸은 살아있는 몸이요, 몸과 성혈은 그 분의 영혼과 그 분의 천주성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신비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무엇보다 먼저 토마스 성인과 함께 그 분께 “나의  주, 나의 천주여”(요왕20:28)하는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신앙이었습니다. 종도들 사후 100년이 채 안되어 성 유스틴은 이렇게 썼습니다. “주님의 기도 말씀으로 축복되고, 변화로써 우리의 몸과 피가 살찌게 된 이 음식은 몸이 되신 저 예수의 몸과 피입니다.( 1st Apologia, ch.66) 이러한 신앙은 초대 교회로 하여금 성체를 경배하게끔 하였고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1600년 전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 조배 하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이 몸을 먹게 해선 안 된다! 우리가 경배하면 죄 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배하지 않으니 죄를 짓는 것이다! Nemo autem illam carnem manducat, nisi prius adoraverit… et non solum non peccemus adorando, sed peccemus non adorando.” En. In ps. 98:9 우리는 주님께 조배와 흠숭지례를 드려야 하니, 특히나 성체성사 안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조배 드려야 만 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그 분을 받아드릴 그때입니다. 먼저 조배를 드리지 않으면 이 주님의 몸을 그 누구도 먹게 해선 안 된다고 어거스틴 성인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손으로 영성체하는 것이 얼마나 안 좋은가를 여기서 보게 되니, 초대교회 시절에 실제현존에 대한 위대한 신앙이 있었고 성신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그 신앙 때문에 분명히 그들은 장궤(무릎꿇기)하는 동안 혀로 영성체 하는 관습을 도입하였습니다. 후일, 실제현존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서서 손으로 영성체를 받아드리는 습관을 받아드린 자들은 이단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에 이르러 6명의 개신교 목사들이 새미사를 준비하는 책무를 도왔으며 개신교를 모방하기 위해 손으로 영성체를 하는 실험이 도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주교들과 바오로6세의 약점과 공모를 통해서 손으로 하는 지극히 나쁜 이 영성체가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이 나쁜 관습으로 인해서 실제현존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린 수천 수백만 명의 신자들이 있었고, 심지어 사제들 조차 실제현존에 대한 신앙을 상실하였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에 있는 아타나시우스 슈나이더라는 훌륭한 주교님은, 이와 같은 손으로 영성체 하는 오용이 고쳐질 때까지 성 교회 안에서 신앙의 위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좋은 책을 썼습니다. 이와 같은 나쁜 관행은 초대교회의 신앙의 정신과는 반대되는 것이며, 사랑의 성사 안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은 능멸로 이끌고, 은총을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천주께서는 거만한 자를 배척하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성총을 주시느니라.“(야고보 4:6) 그래서 주님을 받아드리기 위해 우리 주님 앞에서 경건하게 무릎을 꿇는 것은 예수께서 풍성히 주시려는 은총에 대해 영혼과 마음을 여는 것이지만, 존경의 표시 없이 서서 손으로 받는 것은 경배의 결여로 말미암아 은총의 장애가 되는 것이기에 영혼을 닫는 것이고 열정을 감소시키고 받아들이는 은총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체는 모든 성사(聖事)의 으뜸이며 다른 모든 성사가 지향하는 정점이라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가르칩니다. 실제로 다른 성사들은 은총을 주지만, 이 성체성사는 은총을 지으신 바로 그 저자(著者)의 성사이니 그래서 우리가 무궁무진한 방법으로 성사의 그 근원에서 은총을 마시는 것입니다! 성세성사는 성체의 문과 같은 것이니, 이는 그 누구도 그가 먼저 성세(聖洗)를 받지 않는 한, 성체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견진(堅振)은 주님을 더 잘 받을 수 있도록 영혼에 힘을 주는 것입니다. 고해(보속)는 주님을 받아드리도록 영혼을 회복시키고 정화시킵니다. 종부성사(終傅聖事)는 노자성체(路資聖體) 즉 마지막 성체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신품성사(神品聖事)는 성체성사를 위해 분명히 있는 것이니 사제란 거룩한 성체를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신자들은 사제가 없으면 거룩한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자들의 의무란 많은 훌륭하고 거룩한 성소자(聖召者)가 나오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혼배(婚配)조차 거룩한 성체와 연결되어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첫 성 변화인 가나의 기적을 행함으로써, 혼인이 성사의 고결성이 되도록 끌어올렸으니, 공생애를 시작하실 적에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킴은, 공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포도주를 자신의 지극히 거룩한 성혈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사전(事前)에 형상화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거룩한 성체는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교회 사이에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혼배성사입니다. 이 성체성사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에 의하면 가장 높은 영적인 생활입니다. 혼인은 좋은 것이지만 봉헌된 사제의 삶이 더 좋은 것이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더 높은 결혼, 그리스도와 신비적인 결혼, 거룩한 성체성사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분명히 더 나은 것입니다.

거룩한 성체는 일치의 성사입니다:”우리가 축성하는 이 축성의 잔은 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혈과 일체됨이 아니뇨? 우리가 떼는 면병은 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일체됨이 아니뇨? 대저 면병은 하나이매 우리는 모든 이가 한 몸을 이루노니, 우리는 다 한 면병에서 (제 몫을) 받음이라.“(코린토 전 10:16-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일치되었기에 그 분의 몸인 교회로 일치가 됩니다. 어거스틴 성인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성체를 여러분 몸 속으로 변화시킨다고 말하지 마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그 분의 몸 속으로 변화시킵니다! 주님은 우리를 동화(同化)시키고 점점 그 분 자신에게 우리를 일치시킵니다. 주님은 그 일치의 결합을 강화시킵니다. “사랑은 완덕(完德)을 매는 끈“(콜로새3:14)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 밖에서 (분파인 정교회 등에서) 영성체를 받는 사람은 일치의 성사를 받아드리면서도 성 교회와의 일치를 거부하는, 성사 안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가르칩니다. 교황과의 교류를 거부하는 이들(교황공석주의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 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가치하게 살아가는 교회 내의 너무나 많은 영혼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성체(聖體)에 관한 법이 있습니다.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을 전적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보답으로 그 분께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성세로 인하여 우린 이미 거룩한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영성체로 말미암아 우리가 얼마나 더 거룩해져야만 해야 할까요?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 만민을 위하여 죽으셨으니, 이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이제 더 자기를 위하여 살지 말고 오직 만민(萬民)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고자 하심이라.“(코린토 후5:15) 오히려 주님이 바오로 성인 안에 사시듯이, 주님이 우리 안에 사셔야 합니다:”그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내 안에 살으심이니라.“(갈라타 2:20) 현 시대의 이교도(異敎徒)들처럼 우리가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시대의 비도덕적인 삶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나쁜 표양을 따르면 안되니, 심지어 교회의 일원(一員)이나 성직자들의  나쁜 표양을 따르면 안됩니다. 우리는 거룩해져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또한 거룩하여라.“ (Lev 11:44). “하늘에 계신 성부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마테오5:48) “너희는 육신으로써 천주의 영광을 현양하며(저를 모실지니라) “(코린토 전 6:20)

특히, 성체와 정결(貞潔)의 덕행 사이에는 특별한 끈이 있습니다. 참으로 성체는 “천신들의 빵”(성영77:25)으로 부릅니다. “선택된 자는 곡식(穀食)으로, 동정자들에게는 포도주로 풍성하리니.“(즈카리아9:17) 한편, 성체를 받아드리기 위해서는 요구되는 정결이 있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되고 어떠한 대죄로부터 깨끗해야 하며, 반면에 희생과 영성체로서 거룩한 성체는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해 줌으로써 세속적인 쾌락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떼어 내야 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게 거하고 나도 저에게 거하며 “(요왕6:57)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영원한 성체배령, 완전한 천주님으로의 모상의 변화가 없다면 천국은 무엇이 될까요?  “가리우지 않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우러러보는 우리들은 다 이 우러러봄으로써 항상 더욱 영화롭게 주와 동일한 모상으로 화할 것이니, 이는 주의 성신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니라.“(코린토 후 3:18) 사람은 정결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은총, 특히 봉헌된 동정성의 삶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적절한 지향을 가지고 받아드린 성체 안에서 입니다.

반대로 은총의 상태가 아닌 상태에서 성체를 받아드리면, 바오로 성인은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대저 합당치 않게 주의 몸을 분별하지 아니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그 먹고 마심으로써 천주의 심판을 스스로 당하게 하는 것 임이니라.“(코린토 전 11:29) 그래서 성직자들이 심지어 추기경들이 동성애나 간음 등 통탄할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에게 영성체를 받도록 허용하는 것을 제안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지극히 비통한 일입니다. 이는 진정 추문입니다. 이들 가엾은 죄인들이 사죄를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오직 사죄 후에만 성체 안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저들의 죄를 끊고 보속(補贖)을 행하고 죄의 상태에서 떠나야 합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성물(聖物)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도 말라.”    (마테오7:6) 성체보다 더 거룩한 것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성체가 아니라면 이보다 더 값진 진주가 무엇인가요? 성경에서는 동성애자들이 때때로 개로 비유됩니다(묵시록22:15) 그리고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을 돼지로 비유합니다.(베드로 후 2;22) 대죄 상태에서 성체 안에 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리는 것은 신성모독(神聖冒瀆)이라는 매우 비통한 죄입니다. 만약 대죄를 범하면, 영성체 하기 전에 보속이 필요합니다. “천주의 인자하심이 너를 개심시키고자 하심을 너는 알고 있느냐? “(로마2:4) 예, 천주님은 죄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만 보속을 우회(迂廻-비껴감))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보속을 행하게끔 하니, 보속 후에만 거룩한 성체를 받게끔 합니다.

거룩한 성체와 정결 사이의 관계에 있어 가장 탁월한 사례가 있으니 이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곳은 성모님의 지극히 깨끗하신 태중이었고 성모님은 9개월간 이 친밀한 결합에 대해 당신 안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피, 영혼 그리고 천주성의 현존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출생 후에도 이러한 영적인 결합이 느슨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강해지고 깊어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드리는 같은 몸과 성혈은 성모님이 지극히 깨끗한 태중에 품었던 그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이 하셨던 것처럼“너희는 육신으로써 천주의 영광을 현양하며 (저를 모시도록)“(코린토 전 6:20)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체 안의 우리가 받는 몸과 성혈을 예수님께 주신 성모님에게 항상 고마워해야 합니다. 

치프리아노 성인께서 미사를 정의(定義)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의 희생”의 제헌(祭獻)인 저 희생의 재제정(再制定)인 십자가의 거룩한 희생을 기억 삼아서 매번 성모님은 성 요한의 미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성모님은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을 다시 받아드리는 헌신으로 미사에 참여하였습니다! 매번 영성체 때에 우리가 이 같은 헌신을 가지고 주님을 받아드릴 수 있게끔 성모님께 도움을 간청합시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과 함께 성모님이 자신을 제헌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제헌할 수 있게, 그래서 열렬한 영성체로 인하여 저 영원한 영성체, 거룩한 성체가 매우 아름다운 영원한 삶의 표시가 될 수 있도록 성모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