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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01. 가톨릭 신자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4-09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1. 가톨릭 신자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

1. Why are Catholics Confused?

 20세기 후반기를 사는 가톨릭 신자들이 (현 교회 상황에 대해)혼란스러워 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지난 20여 년간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략 바라보기만 해도 최근의 현상이 그렇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얼마 전만 해도(교리라든가 우리가 가야할)길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어서, 그 길을 따르든지 아니면 따르지 않거나,  신앙이 있거나, 또는 있었던 신앙을 잃어버리거나 혹은 신앙이 전혀 없거나 였다. 그러는 와중에 신앙이 있는 사람(성세성사를 받고 가톨릭에 들어온 자, 12살쯤 되어서 성세성사 때의 서약을 갱신하고 견진성사를 받는 날에 성신(聖神)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믿어야 하며 또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무엇을 행해야 할지를 모르는 사림들이 넘쳐난다. 다른 곳도 아닌 가톨릭교회 안에서 언어 도단의 발언들이 무수히 나오는 것을 듣게 되고, 늘 배워왔던 교리와는 전혀 다른 것을 읽게 되니 이상한 의혹이 스며든 것이다.


 1968년 6월 30일 신앙의 해를 마무리하면서, 로마의 모든 주교 및 수많은 신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교황 바오로 6세는 가톨릭신앙에 관한 백서(白書)를 작성하였다. 그 서언(序言)에서 가톨릭교리에 대한 공격에 맞서기 위한 방책을 마련했으니, "여러 충실한 영혼 안에 의문과 혼란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는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겪고 있는 그대로"라고 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담화(1981년 2월 6일)에서도 이와 같은 말이 나타나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가톨릭신자들이 길을 잃고 어리둥절해 하며 혼란스러워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속았다고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교황은 문제의 제일 큰 원인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나는 교회가 항상 가르쳐 온, 천주께서 계시해 주신 진리와 영 딴판인 관념들이 퍼져 나가고 있음을 보고 있다. 신덕도리와 윤리 신학에서 진짜 이단(異端)이 나타나고 소란스런 의혹, 혼란, 배교(背敎)가 출현한 것이다. 전례(典禮)마저 큰 손상을 입게 되었기 때문에 가톨릭신자들은 분명한 신덕도리나 객관적인 도덕성이 결여된 지식들, 도덕계몽주의, 사회주의적 그리스도교 문화에 잠기고 있다."


 어디서든지(대화, 서적, 신문,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그리고 통계상으로 나타나는 미사와 성사(聖事)에 대한 불만이 있게 되고 툭하면 (계명 준수가)이완해지는...그리하여 신앙생활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는 현 가톨릭신자들의 행동에서 그 같은 혼란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러한 의혹을 갖게 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인즉, 도대체 이러한 상태까지 몰고 온 것 그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신자들의)영혼에 있어서 고결성이 사라지고 즐거움이나 쾌락을 좇는 취향, 그리고 세속생활이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의 분심거리로 말미암아 신앙이 약해진 것일까?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은 어느 쪽으로든지 늘 함께 있어 왔기에 진짜 이유가 못된다. 오히려 새로운 정신이 가톨릭교회 내부에 도입되어 과거 (교리)가르침이나 생활 전반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던지는 바람에 수계범절이 급속도로 무너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교회의 옛날 가르침 및 전반적인 생활은 모든 주교들이 인정한 교리문답을 통해서 전해 내려왔지만 변화되지 말아야 할 교회의 신앙을 기초로 했었다.


 신앙은 확실성에 기반을 두었었다. 그런데 바로 그 확실성이 뒤집히는 동시에 혼란이 온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교회는 천주교야말로 오직 하나인 참된 종교라고 가르쳤고 신자들은 또한 당연히 그렇게 믿었다. 실제로, 가톨릭은 천주께서 직접 세우신 반면 다른 종교들은 사람들의 작품이다. 결국 그가 가톨릭신자라고 한다면 잘못된 종교와 접촉하기를 중지해야하고 오류에 빠진 저러한 종교에 연결된 이들을 가톨릭교회로 데려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직도 그런가? 참말이지 그렇다! 진리는 변할 수 없으며, 그 외의 것은 결단코 진리가 아니다. 어떤 새로운 사실로도, 신학적인 혹은 과학적인 발견으로도....신학적인 발견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한다 할지언정....가톨릭에 대하여 다른 종교보다 못한 구원의 수단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교황이 직접 나서서 그릇된 종교에서 행하는 종교 예식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던가, 이단자의 교회에서 기도하고 연설하는 현실이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듯이 경악을 금치 못할 사건이 일어나는 장면을 전 세계에 보도하니 신자들은 이제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 나중에 지면을 할애하여 그를 주제로 삼아 살펴보겠다 - 는 나라 전체를 교회로부터 뜯어내서는, 유럽을 영적(靈的)이고도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던져 넣어 가톨릭 교계를 광범위하게 파괴했음은 물론, 구원 및 성사(聖事)에 관한 교리를 그릇되게 지어 낸 자다. 교회에 대항한 그의 변혁은 그를 본받아 유럽과 전 세계를 무질서, 혼돈 속으로 던져 넣은 혁명가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5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루터를 교회의 예언자 혹은 교회 학자로 생각하려 하는데 그런 일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니, 그는 (반항자이지)성인(聖人)도 아니지 않은가?


  바티칸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연합(聯合) 가톨릭-루터 위원회(Joint Catholic-Lutheran Commission)에서 비롯된 Documentation Catholique 혹은 교구 주교의 문서에서 다음과 같은 해설을 읽을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관념에는 다음과 같이 루터가 요구했던 것들 중 많은 것이 응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새 교회법에서 도입한 관념--교계제도상의 관념이 아닌 민주주의적인 관념)으로 묘사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면 모두 사제직임을 강조하며 종교의 자유에 대한 개인의 권리가 그것이다. 신학 및 현대의 교회생활에 딱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당대의 루터가 요구한 다른 것들도 있다. 즉 전례 때 공용어를 사용함, 양형 영성체도 허용함, 신학 및 성체성사의 거행을 갱신함 등이 그것이다."


  정신이 아찔한 해설이 아니고 무엇인가! 스스로를 일컬어 미사와 교황의 해결책이면서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천명한 루터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란다! 그 독설가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요구한 것을 한데 응집시켰다는 것이다. 루터 이르기를 "나는 모든 창녀촌, 살인자, 도둑, 간음을 행한 자들이 오히려 저 혐오스러운 미사보다도 못한 악이라고 선언하는 바이다!" 이같이 터무니없는 요약문으로부터는 그저 하나의 결론만을 끌어낼 수 있다. 즉, 루터의 정신을 인정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징계하든지 아니면 16세기 이후의 프로테스탄티즘을 이단적이고 또 종파 적이라고 선언한 트리덴틴 공의회를 비롯한 모든 교황들을 징계해야 하는 것이다.


 그 같은 사건 전개로 말미암아 가톨릭신자들이 혼란스러워짐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상기한 것 말고도 다른 것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몇 해 지나지 않아서 가톨릭인들은, 어른들이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알아왔던 수계범절에 본질적인 변화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성전 내부를 보면, 제대를 무너뜨리고 탁자로 바꿔친 데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빈번하게 이리 저리 옮기고 치워 버린다.


 감실은 더 이상 가장 좋고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어떤 때에는 기둥 한 귀퉁이에 놓이는 바람에 감추어진 채로 있다. 중앙에 그대로 놓여있는 경우에도 미사 내내 사제는 등을 돌리고 있다. 거행자와 신자들이 서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경문을 주고받는다. 누구라도 성합(聖盒-성체를 담는 그릇)에 손을 댈 수 있고 보통 빵 바구니, 큰 접시, 세라믹으로 된 둥근 그릇으로 대신한다(일러두기: 전통적으로 미사 때 쓰이는 성구(聖具)들은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금이나 은으로 도금한 것이라야 한다) 여자들을 비롯한 평신도가 성체를 분배하고 또 손으로 영성체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성변화(聖變化)의 진리에 의혹을 드리운 채 불경(不敬)스럽게 다루어진다.


 성사(聖事)는 곳에 따라 여러 다양한 형태로 거행되고 있다. 이를테면 성세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는 연령, 다양한 혼인 강복, 전례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타종교 내지는 순전히 세속적이기만 어떤 문학에서 빌려오며 때로는 정치적인 관념만을 내세우고 있는 성가와 독서를 도입하기도 한다.


 교회의 보편 언어인 라틴어와 그레고리안 성가가 거의 다 사라졌다. 모든 성가는 흔한 현대식 용어의 노래들로 바뀌어서 이곳 저곳에서 오락적인 리듬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또 가톨릭신자들이라면 사제나 수도자들이 자신이 종교인 신분인 것을 부끄러워하기라도 하는 것 마냥 수도복을 갑작스럽게 벗어버리는 (일반인 복장하고 있는 것)것에 대해서도 놀라워할 것이다.


 자녀를 교리문답에 보내는 부모들은 신덕도리, 성삼위일체, 강생의 신비, 원죄, 무염시잉모태 같이 아주 기초적인 것까지도 이제는 가르쳐지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신앙의 방향 감각이 크게 상실되었다고 느끼게 되었으니, 그 모두가 (시대가 바뀌었으니)이제는 진리가 아니고 시대에 뒤진 과거의 것이라는 말인가? 그리스도인의 덕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겸손, 정결, 고행을 논하는 교리문답을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신덕은 변화되는 개념이 되어 버렸고 애덕은 누구나 다 행하는 공동체 의식이 되었으며 그리고 망덕은 무엇보다도, 현세의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소망이 되어 버렸다.


 위와 같은 새로운 개념은 인간 사회에서 조만간 어느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이니, 경악과 혼미의 상태랄 수 있는 첫 단계가 지난 후에는 그것에 익숙해져 동화(同化)되는 법이다. 인간의 생활을 보건대, 사물은 행동양식을 변화시킨다. 내가 아직도 아프리카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절이라면 이제는 배-정말로 증기선 회사가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면 말이다-를 타지 않고 비행기로 다닐 것이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 어떤 시대를 살아야 한다면, 시대에 맞게 생활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성(靈性)에 관련된 초자연적인 질서에 신 개념을 도입하려던 가톨릭신자들은 시대의 변화에 변화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깨달아, 미사성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사를 변화시키지 말아야 하며, 단호하게 계시해 주신 진리를 바꾸지 말 것이며, 신덕도리 하나라도 다른 것으로 대체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음 장(章)에서는 교회의 이면(裏面)을 알게 된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의문에 답하련다.


 나는 또 공의회(196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을 깨우쳐 줄 예정인데, 그들 젊은이들에게는 가톨릭 공동체가 깨우쳐 주었으면 하고 기대할 권한이 있는데도 공동체가 깨우쳐주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때가 되어서 사제 없는 교회와 영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가르침을 대하게 될지도 모르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사람 및 불가지론자들에게 내가 말할까 하는데, 그들은 천주님의 성총으로 언젠가는 마음이 움직이게 되고야 말리라.


 그 다음으로는 언론 전반 특히 프랑스에서의 관심으로 판단해보면, 온갖 상황을 미루어보면  모든 이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의문이 있다(언론인들도 혼란스러워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머리기사 몇 가지를 보자. "그리스도교 문화는 죽어가고 있는가?(Is Christianity Dying?)"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를 거역하는 시대가 올 것인가?(Will Time Work Against the Religion of Jesus Christ?)" "과연 2000년에도 사제가 남아 있을까?(Will There Still Be Priests in the Year 2000?)" 이상의 의문들에 대해서도 내가 꾸며낸 새 이론을 가지고 답변하는 것이 아니라 깨지지 않는(깨질 수 없는) 가톨릭성전. 그러나 근년 들어 독자들 보기에 전적으로 새로운 것 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너무나도 무시당하고 있는 이 가톨릭 성전(聖傳)에 입각하여 답변해 줄 수 있게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