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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07. 새 교회의 사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8-17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7. 새 교회의 사제

7. The New Priests

 


  길을 걷는 사람이든, 심지어 종교에 관한 질문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사제의 숫자가 점차로 줄어드는 것이 분명한데,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신문에서도 이 현상을 생각나게 해 준다. “과연 미래의 교회는 사제 없는 교회인가?”라는 제하(題下)의 서적이 나온 지도 벌써 15년이 넘었다.


  그러나 그 책에서 밝힌 것보다도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신덕(신앙)을 간직한 사제가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을 또 제기하고 싶다. 좀 더 나아가 최근에 신품성사를 받은 사제에 관한 의문이 생기는데 ‘과연 그들이 참된 사제일까?’가 라는 질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받은 서품이 과연 유효할까? 똑같은 의혹이 다른 성사들에도 있으니, 1982년 여름 브뤼셀(Brussels)의 주교성성에서 서품식을 거행하는 주교가 성직수임 후보자들에게 말하기를 “간디(Gandhi), 헬더 까마라(Helder Camara) 그리고 모하메드(Mohamed)와 같은 종도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 것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간디와 모하메드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과연 교회의 의향대로 서품을 행하려는 것인가?


 사제서품을 주기 위한 신품성사가 몇 년 전에 툴루즈(Toulouse)에서 있었다. 해설자가 세례명이 C라는 성직수임 후보자를 소개하니까, “그는 노동자층에 속해 있고 교회를 위하여 자기를 완전히 바침으로써 더 철저하게 하느님과 인간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말로 시작하였다. C는 팀의 일원으로서 신학교 훈련, ‘교육과정’을 이수했다는 사람이었다. 그 후보자를 주교에게 천거한 것은 바로 그 팀이다. “그의 지원을 승인 및 허가해 주시어 신품성사를 베풀어 줄 것을 청하는 바입니다.” 그러자 주교는 그에게 사제직을 정의(定義)한다며 몇 가지를 질문했다.


 ‘신앙인들과 더불어 정의, 박애 및 평화를 위해 싸우면서 인류가 추구하는 표징과 증인이 되기 위해’,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해’, ‘사람들의 생활, 그들 선택하는 방식, 문화 유형, 그들에게 허용된 선택 범위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인식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행적을 기념하고 또 그렇게 봉사하기 위해’ 그대는 사제서품 받기를 바라는가, 그대는 ‘복음적인 봉사를 하도금 맡겨진 책임을 나 그리고 주교들의 지체와 함께하기를 바라는가?’


  그 뒤를 오는 안수를 보면 성사의 ‘재료’도 그대로였고 ‘형상’, 즉 신품성사의 경문도 그대로였지만 의향은 결코 분명하지 않았던 것을 지적해야겠다. 사제가 다른 것은 다 포기하고 오로지 사회 계급에만 봉사하기 위해서 그리고 특히 (초자연계가 아닌) 자연계의 질서에만 국한되는 수준의 정의, 박애 및 평화를 확립하기 위해서 신품성사를 받았다는 것인가?


 뒤를 잇는 성체 예식, 이제 막 신품성사를 받은 사제의 ‘첫 미사’는 실제로 그런 방침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환경을 위한 제헌경이 특별히 준비된 것이다.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이 빵과 포도주를 당신을 위하여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주여, 당신을 맞아들이나이다. 오직 보다 나은 생활 환경이 되게 애쓰고 있음을 보여 드림과 아울러 더욱 공정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건설키 위한 우리의 노동과 수고를 보여 드리려 하나이다......” 봉헌을 위한 기도는 모호하기까지 하다. “보소서 주여, 이 빵과 포도주를 드리오니, 당신이 계시는 방식 중의 하나가 되게 하소서.” 오 이런! 그런 식으로 거행하는 사제들은 실제적인 현존을 믿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확실한 게 하나 있으니, 스캔들에 해당되는 서품식의 희생자는 사태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또는 자기가 아는 게 무엇인가 생각하지 못하고 서약하는 청년이다. 그 후 그가 어떻게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그에게 제시된 이상(理想)은 그를 오래 동안 만족시키지도 못하고 또한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잘 모를게 뻔하기 때문이다. 사제는 본질적으로 그저 세속인이 아닌 신앙의 사람이다. 정체성의 상실, 즉 자기가 무엇 하는 사람인지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자신 및 자신의 사제직에 필히 어울리는 신앙을 잃게 되어 있다.


  성 바오로와 트리덴틴 공의회에 의해 규정된 사제직에 대한 정의(定義)가 근본적으로 변질되었다. 이제 사제는 제단 위에서 죄를 속량(贖良)받으려고 천주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아니다. 본디 사제직에서 제1의 목적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요, 복음화는 2차적인 목적인데, 최우선해야 할 것이 뒤로 밀려가고 부차적인 목적이 앞서는 방식으로 상호간에 목적 순서가 뒤바뀌었다.


  많은 사례를 들 수 있어서 결코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없는 C의 경우를 보면, 제사 및 성사보다도 복음화가 우선시 되어 급기야는 그것이 기본 목표가 되었다. 이러한 중대한 오류에는 심각한 결과가 오기 마련이다.


  목표도 없는 복음화는 그 향방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까닭에 그릇된 ‘사회 정의’와 잘못된 ‘자유’ 등, 세속을 만족시키는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그것들은 발전, 진보, 세계 건설, 생활환경 개선, 평화주의와 같이 새로운 호칭을 필요로 한다. 거기에는 오로지 혁명으로 유도하는 의미의 언어만이 있다.


  제대(祭臺)의 희생제사는 더 이상 사제직의 제1의 목적이 아니게 되었으니, 성사(聖事) 전체가 위기에 처해있으며, ‘본당 구역을 책임지고 있는 이’와 그의 ‘팀’은 성사를 도와달라고 평신도를 요청하면서, 실제로는 그들 자신은 노동조합, 또는 일반 노동조합보다도 더 정치적인 일로 인하여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사회 투쟁에 전념하는 사제들은 대체적으로 가장 정치화된 조직만을 선택한다. 그 안에서 그들은 정치, 교회, 가족 및 사회구조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남아나는 것이 없다. 공산주의는 효율적인 대변자로 그런 사제들을 철저하게 이용해 먹었다.


   나는 언젠가 한 추기경에게, 특히 미사성제에 관한 신학을 심화시키고 전례상의 기도로 지향하게끔 끌어들이는 영성(靈性)을 주제로 삼아 우리 신학교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추기경이 이르기를, “몬시뇰, 그것은 한창 젊은 우리 사제들이 지금 원하고 있는 것과는 정 반대군요. 지금은 복음화의 관점에서만 사제를 정의(定議)하고 있소.” 나는 말하길, “무슨 복음화요? 근본적으로 미사성제와 무관한데, 그 정의를 어떻게 이해한단 말입니까? 정치적 복음화요? 아니면 사회적? 아니면 인도주의요?”라고 응수하였다.


  종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는다면 전사(戰士) 및 마르크스주의 추종자(노조원)에 불과하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통찰하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새로운 비법이 필요함으로 방법을 찾아 헤매는 와중에, 안타까운 것은 미사성제를 드리는 제대라는 비법은 요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완전히 미혹에 빠져 결혼까지 하게 되어 결국 사제직을 포기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리 놀랄 일이 못된다. 1970년 프랑스에서는 285회의 서품식이 있었고 1980년에는 111회가 있었다. 또 그중 몇 사람이나 환속했거나 또는 환속할 것인가? 이미 인용(引用)한 놀랄만한 숫자도 성직자 수의 감소량을 제대로 다 확인한 것도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제공되는 것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 추기경이 ‘지금 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만으로는 그들의 열망이 채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쉽사리 그 증거를 댈 수 있다. 미사성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하기에 더 이상의 성소자(聖召者)가 없는 것이다. 결국에 가서는 사제가 어떤 신분인지 그 누구도 설명하지 못하게 되었다. 바꾸어 말해서, 교회가 항상 가르쳐 온 대로 성제(聖祭)가 알려지고 존중되는 곳에서는 성소자가 많이 있다.


  내가 세운 신학교로써 이를 증명했다. 우리가 행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영원한 진리를 보전(保全)하는 것이다. 광고를 내지 않았어도 성소자들은 자발적으로 왔다. 현대주의자들은 오직 광고에만 의존한다. 13년 동안 내가 신품성사를 준 사제는 187명이었다. 1983년 이후에는 정규 숫자가 1년에 35명 ~ 40명이 되었다. 에콘(Ecne), 릿지필드(Ridgefield-미국), 자이쯔코펜(Zaitzkofen-서독), 프란치스코 알바레즈(Francisco Alvarez-아르헨티나) 및 알바노(Albano-이탈리아)의 신학교에 지원하는 젊은이들은 오로지 미사성제로 인하여 이끌린 것이다.


  우리 주님의 대리자, 즉 또 다른 그리스도로서 제대에 오르려는 젊은이들에게 그 얼마나 특별한 성총인가! 현세에서 이보다 더 좋고 위대한 곳이 없다. 이곳에는 자기 가족을 떠나거나 가정을 꾸밀 것을 포기하거나 또는 세상을 끊어버리고 청빈(淸貧)을 받아들이는 만큼의 값어치가 있다. 그런데 바로 그 흡인력(吸引力)이 없어지면, 솔직히 말해 아무런 보람이 없다 할 것이니, 신학교가 텅텅 비는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인 것이다.


  교회가 선택한 노선을 20년 동안 이대로 계속하면 “2000년에도 과연 사제가 남아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분명히 “아니다”이다. 그러나 진정한 신덕의 의향으로 회두하면 신학교에도, 수도 생활에도 성소자가 넘쳐날 것이다.


  사제나 수녀가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자기 자신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 결합시켜서 제대(祭臺)의 희생물(犧牲物)로 바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수도 생활은 무의미하다. 젊은이들은 이전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 시대에도 열성적이다. 그들은 자기를 봉헌(奉獻)하기를 열망한다. 결함이 있는 쪽은 바로 우리 시대다.


  모든 것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 건물의 기초를 공격하면 전체가 파괴된다. 미사가 없으면 사제도 없다. 바뀌기 이전의 예식에서 주교는 “주님의 이름으로,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천주께 거룩한 제물을 봉헌하고 미사성제를 드리는 권(權)을 받으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하기 전에 주교는 또 “그들이 강복하는 모두가 강복 받고 그들이 축성하는 모두가 축성되어 거룩해지도록”이라는 경문을 발음하면서 성직수임 후보자의 손을 축성했었다. 베풀어지는 권(權)은 분명하게 표현된다.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및 거룩한 강복을 인하여, 그들이 빵과 포도주를 천주 성자의 몸과 피로 성 변화케 해 주사이다.”


  요즘의 주교들은 “거룩한 백성의 봉헌을 받아 하느님께 드리라”고 말한다. 새로 탄생하는 사제를 성직자로서의 사제직 보유자 겸 제물 봉헌자라기다는 오히려 중개인으로 보는 것이다. 개념이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성 교회에서 사제는 언제나 신품성사를 통한 인호가 각인(刻印)되는 특별한 이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정도 말할 단계가 되었으면 이미 성직수행을 ‘정지’당해도 열 번은 당했어야 마땅한데, 이른바 주교라는 자가 성직수행을 ‘정지’당하지도 않은 채, “사제는 평범한 신자들이 행할 수 없는 것을 행하는 특별한 이가 아니다. 그저 세례 받은 또 하나의 사람에 불과할 뿐 ‘또 다른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런 주교가 하는 것이란 겨우 공의회와 공의회에 의한 전례(典禮)이후에 유행하는 가르침에서 비롯된 결론을 끌어내는 일 뿐이다.


  평신도의 사제직과 사제의 사제직 사이에 혼란이 왔다. 악명 높은 네덜란드식 교리문답에 관하여 연구하도록 임명된 추기경들이 말한 것을 보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함에 있어서 성직자로서의 사제직의 위대성이란 차원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측면에서도 신자들의 공동 사제직과는 다르다”고 한 적이 있다. 바로 이 점에서만 극력 반대하여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 정신)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변하지 않는 교리를 보면, 사제는 거룩하고 또 지워지지 않는 인호로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그대는 영원한 사제니라(Tu es sacerdos in aeternum).” 천신 앞에서, 천주 대전에서 무엇을 행하든지 사제로 남아 있으리라는 것이다. 사제가 자신의 캐속을 벗어버리던 간에, 빨간 옷을 입던지, 다른 색깔의 옷을 입거나 또는 가장 추악한 죄악을 범하여도 사제라는 그 상황을 바꾸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신품성사가 근본적으로 변질된 것이다.


  우리(사제)는 ‘교회의 기능을 채우고자 회중이 뽑은’ 사제가 결코 아니며 경배를 드리는 대표자(?) 또는 공직자(???)가 다시 신자들 가운데서 특정한 지위를 차지할 목적으로 몇 사람에 의해 뽑힌, 정해진 기간만을 근무하는 사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 사제식의 신성함을 흠집 내는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세속화되기까지 한 사제의 임무에 관한 시각은 자연스럽게 사제의 독신제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거듭되는 로마 당국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폐지하라고 시끄럽게 요구하는 압력 단체가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신학생들이 사제결혼 문제를 ‘보장’받고자 서품식에 항의하는 데모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 문제를 재고하라면서 교황청을 곤경에 빠뜨리려 들고 일어난 주교들의 이름을 제시하지는 않겠다.


  성직자가 되었으면 미사와 사제직에 대한 견해를 온전하게 보존했어야 마땅하고 또 그렇게 했더라면 문제는 생기지도 않았다. 두 가지 사안이 있을 경우, 그 두 가지를 완전히 깨달으면 참된 이치가 저절로 드러난다. 이것은 우리의 복되신 성모께서 평생 동정이셨음에 대해서도 같은 이치인데, 우리 주님이 당신의 복중에 잉태되심에는 동정으로 계셔야 했음이 실로 온당하고 또 지당하였다. 성모께서 당신의 복중에 우리 주님을 품고 계셨던 것과 유사하게, 사제는 변화지례 때 경문을 발음하여 천주님을 지상으로 내려오시게 한다. 사제가 그 무엇보다도 영(靈)이신, 영적인 존재이신 천주와 그같이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주님을 잉태하실 정도로 주님과 일체이셨던 성모님과 마찬가지로 사제도 역시 동정이어야 하고 또 독신을 지켜야 함이 옳고 당연하며 타당하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그런데 동방에는 어떤 부류, 즉 결혼한 동방교회 사제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속지 말자. 이는 묵인되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입장을 고수(固守)하는 이들(가톨릭사제)도 아닌 동방 교회의 주교는 결혼하지 않는다. 그런 성직자도 사제의 독신제도를 존중하는데 ..... 사제의 독신제도는 교회의 가장 오래 된 성전(聖傳)의 일부를 이루며 또한 종도들은 성신강림의 그 순간부터 독신제도를 지켜 왔었다. 성 베드로처럼 이미 결혼했던 이들이 자기 아내를 계속 데리고 살기는 했어도,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채로 지냈다.


  이른바 사회적 또는 정치적 임무라는 신기루를 좇는 사제들이 대부분 거의 자동적으로 결혼했음은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 두 가지는 바늘과 실 관계에 있다.


  모두가 우리에게 현대에는 온갖 종류의 특전이 정당화될 수 있음을 믿고, 현대의 환경에서는 정결한 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이를 믿으라 하며, 수도자들이 행하는 정결의 허원이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믿으라 한다. 지난 20년 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지금 시대에 발을 맞춘다는 핑계로 사제직에 가한 공격이 오히려 사제직에 치명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교회란 사제 제도에 입각한 것인지라, ‘사제 없는 교회’란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렇듯 개탄스런 시대에 저들은 평신도에게는 자유연애를, 성직자에게는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백한 비논리성에 근거한 마구잡이의 논리가 그리스도교 사회의 붕괴를 그 목표로 한다고 느낀다면, 그는 사실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며, 옳은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