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르페브르

Home > 마르셀 르페브르 > 라이브러리

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03 . 저들이 미사에 대해 꾸미는 일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5-29



르페브르 대주교 공개서한

3. 저들은 미사에 대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가 ?

3. What They are Doing to the Mass?

 


 가톨릭 신문사에서 발행한 사진 몇 장이 나에게 있는데, 이 사진들은 요즘 통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사의 방식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첫 번째 사진을 보면 어느 순간에 거룩한 희생제사가 이루어지는지를 도대체 알아보기가 힘들다. 양복에 넥타이를 맨 두 사람이 평범한 나무 탁자 뒤에서 서있는데, 한 사람은 성작을, 다른 사람은 성합을 들고 있는 그런 모습이다.


 자료를 통해서 보니, 그들은 사제이며 그중 한 사람은 연합 가톨릭 단체(Catholic Action)의 지도자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두 소녀가 바지를 입고 입은 채로 제1 거행자(擧行者)와 가깝게 탁자 편에 서있고 제2 거행자 가까이에는 소년 두 명이 스웨터를 입고 서 있다. 그리고 걸상의 맞은 편에는 기타(guitar) 한 대가 놓여 있다.


  또 다른 사진이 보여주는 배경은 아마 청년회 중앙 회의실인 것 같은 방 한 구석이다. 우유 짤 때 쓰는 의자를 제대(祭臺)로 활용하면서 그 앞에는 떼에제(Taize)공동체 일원이 입는 장백의를 입은 사제가 서있다. 촛불 두 촉, 커다란 토기(土器), 그리고 같은 재료로 된 작은 머그(mug)잔이 있다. 청년 다섯 명이 양반 다리를 한 상태로  바닥에 앉아 있고 그들 중 한 사람은 아무렇게나 기타를 치고 있다.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을 보여 주는 세 번째 사진은 무루로아(Mururoa)섬에서 진행되는 프랑스의 핵폭탄 실험인데 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막으려고 노력하는 생태학자들의 순항(順航)을 담고 있다. 이 사람들 가운데에는 항해중인 선박의 갑판 위에서 다른 두 남자와 함께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있다. 세 사람 모두 짧은 바지를 입고 있는데, 한 사람은 허리까지 드러낸 상태이다. 사제가 면병을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이는 틀림없이 거양성체(擧揚聖體)다. 그 사제는 서 있지도 장궤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그보다는 차라리 배의 조형물에 깊숙이 기대고 있는 모습이다.


 스캔들이라 할 만한 이러한 사진에서 공통점 한 가지를 포착할 수 있으니, 그 공통점이란 평범한 도구, 느슨한 태도 그리고 일반 복장으로 볼 때 성체성사가 보잘것없는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행위로 격하(格下)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에 이른바 교회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톨릭 잡지에는 그런 사진들을 게재되고 있는데, 문제는 그런 방식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권장하는 경향이 담겨 있다. 라 비(La Vie)는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까지 본다. 흔히 이용하는 방법은 자기 나름대로 표현하는 독자의 편지에서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생각을 발췌하는 것인데, 그러한 것들을 보면 “전례(典禮)의 혁신은 더 이루어져야 한다...

 

 똑같은 말이 반복되는 후렴은 불필요하고, 그 규칙성이란 것은 독창성을 방해하기만 한다”라고 되어 있다. 미사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풀어 가는지 볼까한다. 다음이 그 힌트다. “우리의 문제는 복잡한데다가 어려움이 증폭되고 있는데, 교회는 아직도 요원(遼原)한 상태다. (사람들이)미사에서 모두 지쳐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걱정거리인 일상사와 주일에 (사람들에게)이래라 저래라 하라고 권면하는 생활 방식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고 한다.


 이는 분명히 천주께로 지향하기는 고사하고 미사를 인간적인 차원으로 애써 끌어내리고 또한 잘못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의심’ 속에서 헤매게 만드는 미사에 애착이 떨어져서 신자들이 떠나고 있는 것이다. 미사에 더 멀어지도록 충동질까지 하는 것을 보면, 신성한 것을 파괴하려는 계획적인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가톨릭인이라면 천주께 관련된 것은 모두 영광스럽게 여겨 공경하도록 이끌리는 법이다. 그런데  신성한 것을 파괴하려는 의향이 있는 곳에서, 천주께 관련된 것으로부터 신자들이 멀어지게 함으로 인하여 세상 어느 것보다도 더 필요한 것을, 소중한 것을 간절히 소망할 기회 그 자체를 (신자들이)빼앗긴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의 몸과 피가 될 제물의 요소에 관련된 경우에는 그런 현상이 그 얼마나 훨씬 더한지! 도대체 왜 밀기울을 일부 남겨서 회색이나 갈색의 면병을 만드는가? 새미사의 제헌경(祭獻經)에서는 생략된 바로 그 구절, 즉 조촐한 제물(hanc immaculatam hostiam)을 혹시 애써 망각(忘却)시키려는 의도는 아닌가?


 하지만 이는 부수적인 변혁에 지나지 않는다. 교황 훈령 Inaestimabile Donum에서 되풀이된 바 있지만, 아무 것도 넣지 않고 제조된 순수한 밀가루 빵 대신에 보통 빵, 즉 이스트로 발효시킨 빵의 성변화(聖變化)에 대해서 듣는 일이 흔한 실정이다. 이제는 도(度)가 너무 지나쳐, 미국의 어느 주교는 우유, 계란, 베이킹 파우더, 꿀과 마가린이 들어간 작은 케이크를 권장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신성을 격하시키는 것을, 저들이 우리더러 그토록 믿으라고 하려던 바로 그것인즉, 실질적으로는 그다지 필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사제복과 수도복 그리고 영세명(領洗名)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또한 통속성 및 세속화된 생활 방식으로써 천주님을 섬기겠노라고 서원(誓願)한 사람들에게까지 퍼져있다. 그 증거로는 (성당)울타리를 떠나 도회지의 원룸 형식의 임대 아파트에서 생활함에 따라 비용을 배가(倍加)시키고.....베일(veil)을 벗어버리는 바람에 수녀들이미용비를 규칙적으로 지출하고 있지 않은가?


 성(聖)스러운 것이 훼손되면 신성모독이 초래되는 법이다. 프랑스 서부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은 1980년 프랑스 방데(Vendee)지구에서 전국 소녀밴드 콘테스트가 개최됐음을 보도한다. 소녀밴드 단원들이 춤추는 가운데 미사가 있었는데, 그 단원들 중 몇 사람이 나와서 성체(聖體)를 분배했다고 한다. 또한 미사 거행자가 사제복을 입은 채로 론도에 참가하면서 의식이 끝났다고 한다.


 여기서 내가 의도하는 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얻어듣는 악습의 목록을 작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어째하여 오늘날 가톨릭인들이 이토록 갈피를 잡지 못하고 스캔들까지 일으키게 됐는지, 그 연유(緣由)를 알려주는 사례 몇 가지를 알리는 것이다. 그 어느 하나 비밀스러운 일을 누설하는 것이 아니니, 텔레비전에서는 신자의 가정에 방영한 주일 아침 프로그램 내내 그리스도의 몸에 관하여 주교가 공식적으로 시연(試演)한 것이라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즉석 프로그램이 있으니, 즉 1981년 11월 22일 텔레비전으로 미사를 방영한 것의 목격담을 들어보면, 그 미사에서는 성합(聖盒)이 바구니로 대체되었고 회중이 그 바구니를 서로 서로 전달하여 마침내는 거룩한 조각(성체)을 담은 채 바닥에 내려놓은 일이 있었다!


 같은 해 성 목요일, 큰 구경거리인 축하식이 있었던 퐈티에(Poitiers)에서는 사제가 탁자 위의 덩어리 빵과 주전자 속의 포도주를 성변화 시키고 난 다음에는 누구든지 와서 집어먹게 하는 것이었다.


 세속적인 음악 콘서트가 교회 안에서 열리는 것이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로 되었다. 온통 광란의 도가니인 록음악 이벤트를 여는 데 경배하는 장소가 이용된 것이다. 어떤 교회와 대 성전은 방탕, 마약과 온갖 종류의 외설물에까지 제공된 바 있으며, 그 행사 후에 속죄 의식을 행한 이는 그 지역 성직자가 아니라 그런 스캔들로써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 신자들이다. 그런 일을 촉발시킨 주교와 성직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그대와 그대들을 따르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천주님의 징벌이 내릴 것이 두렵지도 않은가? 사업에 열매가 없음으로 해서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되었을진대 말이다. 실제로 미사성제는 신성(神聖)함이 결여(缺如)된 상태이기에 더 이상 성총을 베풀지도, 전해 주지도 못하는 연고로 완전히 황폐해졌다.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에 실제로 현존(現存)하심에 대한 모독은 이제는 더 이상 가톨릭이 아닌 새로운 정신구조가 그 모습을 드러낸 가장 지겨운 증표이다. 방금 언급한 정도의 야비함에는 이르진 못한다하더라도 그와 비슷한 일들은 매일같이 눈에 쉽게 띈다. 트리덴틴 공의회는 축성된 빵의 가장 미소한 조각에도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 주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설파했다. 그렇다면 손으로 하는 영성체는 어떻게 봐야 할까? 영성체자의 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성반을 사용하면 조각이 항상 남아있기 마련이다. 결국 영성체자의 손에 성체 조각이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그런 식으로 하면 많은 이들의 신앙이 흔들리매, 특히 어린이들의 신앙이 그렇다.


 새미사에서 행하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설명이란 단지 하나밖에 없으니, 사람들이 미사에 와서 친교, 공동체 음식, 공통된 신앙의 빵을 부순다면 그런 경우 당연히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체성사가 단지 과거사에 대한 기억과 우리 주님의 영적인 존재를 표현하는 상징이기만 하다면, 바닥에 부스러기 몇 조각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큰일이 아니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만일 교회의 신앙에 간직된 대로 천주 자신, 우리 창조주의 현존에 관한 문제인 경우에는 최근 로마에서 온 문서가 있어서 허락하는 것이라지만 손으로 영성체하도록 허용하고 부추기기까지 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저들이 그런 식으로 몰래 심어 주려는 관념은 개신교식 관념으로서 아직까지 그런 오염이 안된 가톨릭인들은 그것을 배격하고 있다. 저들은 그 그릇된 관념을 더욱 효과적으로 밀어부치기 위해서 신자들에게 선 채로, (손으로)영성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성 바오로께서 이르시되, 그리스도를 영하러 갈 때에는 천상에서, 땅 위에서 그리고 땅 아래의 모든 이가 그 앞에서 장궤하고 머리를 깊이 조아리며 부복(俯伏)한다는 하는데, 우리는 최소한의 공경심이나 충성의 표시도 하지 않고 그렇게 예를 갖추지 않고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이제는 많은 사제들이 거룩한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으며 새 양식의 미사는 이를 부추기고 있다. 나는 그럴 만한 근거 두 가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하나는 우리가 마치 천주님과 동등하기라도 한 것처럼 천주님을 아무렇게나 취급하게 만드는 무지막지한 교만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천주께서 성체 안에 실제 존재하시지 않는다고 믿는 것, 즉 성체 안에 천주님의 실제적인 현존에 관한 불신이 그것이다.


 내가 이른바 공의회 이후에 일어나는, 교회에 반(反)하는 사건을 과연 조장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나는 그 어느 것도 조작하고 있지 않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신학 교수진 가운데 한명인 딘(Dean)이 직접 표현한 방식을 들어 보라.


  “우리는 화자(話者) 또는 배우(俳優)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지리적으로 ‘거기에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속성을 뜻한다. 어떤 이의 작품은, (육안으로 보일 수 있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에 그가 의도했던 의도를 다른 이들이 충실하게 창조하는 상징적인 행위로써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바이로이트(Bayreuth) 페스티발이야말로 바그너 음악을 기리는 정기 연주회 내지는 콘서트로써 증명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월등하게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존재를 실현시키지 않는가. 내 보기에 그리스도의 성체성사 존재는 바로 앞 문장과 같은 관점에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미사와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을 비교한다? 말도 안 된다, 결단코 동의할 수 없다. 경문과 음악에 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