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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우 및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총장 서한 85호(2015-11-2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17



교우 및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총장 서한 85호(2015-11-21)



사랑하는 형제 및 후원자 여러분


유럽과 아시아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는 테러 공격이 있었고, 중등에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피로 범벅된 박해가 있었음으로 해서, 최근의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에게 지금 돌아가는 현 세상이 그 얼마나 심각하게 처절한 상황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 교회에서는 가정에 관한 최근의 시노드와 다가오는 성년(聖年)의 시작은 합당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생각해 보건대, 여러분들의 염려스러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함으로써, 우리 비오10세회의 생각을 알려드리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생각건대, 전통에 헌신하는 우리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직면한 이러한 문제점들을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지를 훨씬 더 분명하게 강조함으로써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 9월 1일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진(自進)하여 모든 신자들은 다가오는 성년(聖年)에 성 비오10세회 사제들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해도 된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제스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성 비오10세회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요?

 

성년에 즈음하여 교황 성하의 이러한 결정은 사실 우리가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이들처럼 우리도 뉴스 매체를 통해서야 비로소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결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미지를 이용해서 설명할까합니다.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를 때, 모든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불 끌 도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불을 끄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문 소방관이 부족할 때는 그렇습니다. 성 교회를 뒤흔든 이 끔찍한 위기가 지속된 50년 기간 내내, 특히 고해하려는 신자들이 급격히 줄어든 비극적인 이 시기에, 우리 성 비오10세회 사제들은 통회하려는 이들의 영혼들에게 교회법에 사전에 제시된 비상시의 규정을 행사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성년 기간에 교황이 내린 결정의 결과로서 우리는 일반 재치권을 갖게 됩니다. 제가 언급한 설명대로, 이 결정은 소방수의 공식적인 기장(旗章)을 우리에게 주시는 효과가 있는 것이며, 반면에 수십 년간 부인(否認)되었던 이와 같은 (모호한)신분은 철회되는 것입니다. 본래, 성 비오10세회 소속 회원이나 신자들에게 전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 일상 재치권은 아마도 성 비오 10세회에 대해 불편을 느끼거나, 감히 다가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안심을 줄 것입니다. 우리가 기관지(機關紙)에서 교황께 고마움의 글을 올린 것처럼, 성 비오10세회 사제들은 오직 한 가지만이 이루어지길 소망 합니다: 그것은 “아르스의 성인 비안네 신부님께서 모든 사제들에게 보여 주셨던 지칠 줄 모르는 헌신의 모범을 따라, 고해성사에서 새로워진 사제들의 관대함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 가정 사목에 관한 시노드에 즈음하여 귀하께서는 교황 성하께 탄원서를 보냈고, 이어서 선언문이 나왔는데 왜 그런가요?


우리의 탄원서 목적은 현 상황의 심각성과, 이와 같은 중대한 도덕상의 문제에 있어서 교황 성하의 통치에 관한 단호한 영향력을 성하께 가능한 한 분명하게 환기시키려는데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쿠바와 미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9월 18일자 우리의 취지(趣旨)을 알고 계셨고 그래서 그분은 우리에게 알리길, 자신은 혼인에 관한 교리, 특히 혼인의 불가해제성에 대한 가톨릭 교리를 전혀 바꾸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혼인의 결합에 대한 불가해제성이 경시(輕視)되리라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문제점이 일어나고 있으니, 혼인의 무효성을 선언하는 그 과정을 개혁하려는 교황 자의 교서와는 별도로, 이번 시노드의 최종 보고서는 그와는 또 다릅니다. 그래서 10월 한 달 동안 논의되고 많은 질문이 오고 간 많은 쟁점에 대해 성 교회의 지속적인 가르침을 상기시키는 것이 내 의도였습니다. 제게 유감스런 광경, 시노드가 보여준 것에서 특히나 생각보단 훨씬 더 부끄럽고 추문이 되는 그러한 사실을 여러분께 감출 의향은 없습니다.


* 얼마나 부끄럽고, 추문이 되는가요?


예를 들어 교리와 도덕성 사이의 분열, (교회의)가르침과 진리 사이의 분열, 그리고 죄에 대한 관대성과 지극히 비도덕적인 상황에서의 분열입니다. 죄인들에게 인내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된다고 이해합니다만, 그러나 저들의 죄 지은 상황이 비난받지 않는다면, 만일 저들이 누군가가 은총의 상태와 죄 지은 상태, 즉 대죄상태는 영혼에 있어서 죽음을 가하며 지옥의 고통을 저들에게 안긴다는 이야기를 듣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찌 저들이 회개를 할 수 있습니까? 만일 누군가가 천주님의 영예와 존엄에 거스르는 아주 작은 대죄에 의해 야기된 영원한 범죄를 판단한다면, 그는 놀라움으로 죽을 것입니다. 성 교회는 반드시 단호하게 모든 죄, 악행, 그리고 복음의 진리를 부패하게 만드는 오류를 견책(譴責)해야 합니다. 성 교회는 반드시 혼인의 신성성(神聖性)을 공격하는, 추문이 되는 행동이나 지식 그리고 공개적으로 이를 주장하는 죄인들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어찌하여 교회는 이러한 말을 할 용기가 더 이상 없는 건가요?


* 그래도 이번 시노드에 즈음하여 몇 가지 긍정적인 모습, 이를테면 11명의 추기경들이 (작년의 경우 5명에 이어)낸 책, 또한 아프리카 고위 성직자들의 책자(가톨릭 법률가에 이어) 그리고 세 분의 주교들이 발간한 작은 책자들이 있었습니다.


혼인과 가톨릭 가정을 보호하고자 하는 최근에 나타난 이러한 다행스런 움직임은 우리에게 가느다란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설령 어떠한 반응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뭔가를 남긴다 하더러도 이 모습은 유익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모습이 성 교회를 통하여 개정(改正)과 진정한 회개를 일깨우는 시작이 되길 고대합니다.


지난 봄, 파리의 성 니콜라스 드 샤르도네 성당에서 갈레레타 주교님은 강론에서 말씀하시길, 성 교회가 혼인의 주제에 관한 진보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일탈된 계획과 맞서 싸울“항체”를 생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하셨는데, 진보주의자들은 복음서의 가르침에 따라 죄인들을 교정하기 보다는 현 세상의 관습에 연대(連帶)하는 자들입니다. 도덕적 측면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유익합니다. 그리고 도덕이 매우 밀접하게 교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움직임은 교회가 전통으로 되돌아오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날마다 기도합니다.


* 자비라는 이름으로 카스퍼와 같은 몇몇 고위성직자들은 혼인의 불가해제성에 대하여 교회의 교리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최소한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을 위해 영성체에 관한 규율을 완화시키려 하고, 또는 부자연적인 결합(동성결혼)에 대한 교회의 판결을 수정하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모든 이른바 사목적(司牧的) 예외 조항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성 교회는 나름대로 교회법을 제정하고 설정할 수 있는데 이 법들은 단지 천주님의 계명을 명료하게 밝혀두는 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토론되고 있는 혼인 영역은 그런 질문에 대해 너무나 분명하게 벌서 규정해 놓으셨습니다.천주 결합하여 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할지니라.”(마테오19:6)그 말씀 이후 즉각적으로: 누구든지 제 아내를 소박하고 다른 여인을 취하는 자는 간음을 행함이요.”(마테오19:9) 그러므로 성 교회는 오직 해야 할 한 가지만 있습니다. 천주님 계명에 충직해야 함을 말하고 이를 교회법 안에서 소중히 지켜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성 교회는 어떠한 방법으로써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벗어나면 교회의 사명에서 추락하는 것이 되고, 교회의 사명이란 드러난 신앙의 유산을 전승(傳承)하는 것입니다. 평범한 언어로써 그 일에 관해 생각해 보면, 재혼이란 있을 수 없다, 본래 그 자체가 유효한 결혼을 무효로 하거나 해제할 수 있는 경우란 단연코 없다 라고 성 교회는 오직 선언해야 합니다.


물론 교회법은 혼인의 유효성에 대해 필요한 조건을 덧붙일 수 있지만, 항상 천주님의 계명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성 교회는 교회법 형식의 결격으로 인한 혼인을 무효로 선언할 수는 있지만, 천주님의 계명이 교회법에 종속되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인간과 교회법과는 달리, 천주님의 계명은 예외 조항이 없다는 것을 진술하는 것이 필요하니, 왜냐하면 이 천주님의 계명이란, 생겨날 모든 가능성을 미리 볼 수 없고 그리고 예외에 대해 여지를 남겨야만 하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황께 청원서에: “인류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표현인 천주님의 계명은 본래 그 자체가 역사의 모든 기간에 있어서, 그리고 모든 상황에 있어서 최고의 자비인 것입니다.” 라고 썼듯이 무한한 지혜이신 천주님은 모든 일어날 상황을 미리 보십니다.


* 혼인의 불가해제성 원칙을 상기시키는 혼인의 무효성 선언에 대한 과정을 간략히 보여준 것이 9월 8일자 교황의 자의교서 아닌가요? 그러면서 이를 회피하기 위한 교회법 용어를 완화시키지 않는가요?


혼인 무효 과정을 다루는 교회법 정렬을 규정하는 새 자의교서는 물론, 심각한 현 시대의 문제점, 수많은 깨진 가정의 문제점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혼인에 관한 천주님의 계명에 대응하려는 측면에 있어서 신속한 해결책을 제안하기 위하여 이러한 사례들을 조사하고자 원한다면, 그것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문맥에 있어서, 현대의 세속화된 상황과 쾌락주의적인 사회에 있어서 그리고 교회 재판소의 경우에 있어서 금지되고 있는 것이 이미 진행 중이고 이 자의 교서는 무질서를 일으키는 법적인 재가(裁可)가 될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권장되는 치료책보다 훨씬 더 악화될 것입니다. 저는 시노드의 핵심 쟁점의 하나가 억압된 “가톨릭 이혼”에 대해 방법을 열어주는 “뒷문”을 만들어 냄으로써 (가톨릭 결혼관)이 와해될까 매우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구체적으로 성 교회는 많은 남용에 노출되고 있으니, 특히 진보주의, 주관주의를 극복하고 있는 주교들이 사는 국가에서 소중한 감독이 거의 이루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12월 8일부터 시작되는 성년에 보속도 없고 회개도 없는 자비가 강매되는 것은 아닌지요?


현재의 분위기 속에서 회개의 필수적인 행위를 너무나 쉽사리 무시하여 자비에 호소하는 것이 사실인즉, 회개란 천주님을 거스른 공격으로서의 개인의 죄와 죄의 끔찍함에 대해 통회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저는 형제들과 후원자들에게 보낸 지난 번 서한(84호)에서 온두라스의 추기경인 마라디아가가 새로운 영성에 대해 지지를 보여준 자기만족, 즉 자비의 개념은 보속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그 추기경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여러분들이 성년에 관한, 특히 매 15년 주기 희년에 관한 교황 칙서에 관해 발간된 여러 문서를 조심스럽게 읽어본다면, 용서를 얻기 위한 죄에 대한 회개와 통회에 대한 기본 생각이 당면한 문제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은총상태라기보다는 인간이 갖는 “비할 수 없는 존엄”에 대한 회복에 맞추어진 모호한 자비를 고려함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교회를 떠난 이들의 복귀를 촉진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이 고해성사를 보다 쉽게 의지하게 하려는 구체적인 동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교황은 왜 그렇게 많은 그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으며, 왜 신앙생활을 포기했으며, 이것이 공의회와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모른다라는 자문(自問)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의회가 표방하는 “인간의 종교”와 공의회의 비극적 개혁, 고삐 풀린 에큐메니즘, 세속화되고 개신교화 된 전례, 도덕률의 이완 등등.


* 그러면 신자들이 교황에 의하여 정해진 특별 희년 법령 안에서 혼란의 위험이 없이 전통 참여에 헌신할 수 있을까요? 특히 금년, 자비의 해가 바티칸 공의회 50주년을 축하할 의도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둘러싼 “장벽”을 허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확실하게 이 성년(聖年)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일어납니다. 이를 풀기 위하여 성년 또는 희년(禧年)을 가져온 여건과 그리고 성년, 희년의 바로 그 본질 사이에 구별이 필요합니다. 그 여건들은 역사상에 있었던 그리스도 생애의 주요 기념일과, 특히 예수님의 구속사업인 죽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매 15년마다 또는 매 25년마다 성 교회는 성년을 제정합니다. 이 시간은 돌아가면서 진행되는데 희년의 개시에 대한 참고해야할 점은 그리스도 구속 사업에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 12월 8일 때에 따라 성모님의 무염시잉모태 축일인지라 구속 사업과 연게 될 수 있겠지만 이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지극히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고, 우리가 이를 강력하게 거부하는데, 왜냐하면 이 공의회가 가져온 황폐함, 성소의 급격한 감소, 수도자 생활에 참여하는 이들의 극적인 쇠퇴, 특히 요한 바오로 2세가 직접 언급한 “침묵의 배교”로서의 대규모적인 신앙의 상실을 볼 때, 우리는 기쁨을 나눌 수 없고 오히려 울어야 만 됩니다.


성년의 핵심적인 요소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년은 성 교회의 특별한 해, 교황의 결정에 기반 되고 있으며, 교황은 핵심적인 권능을 가지고 신자들로 하여금 천주님께 다다갈 수 있도록, 특히 죄에 대한 용서와, 죄로 인한 벌의 면제로 인하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은총의 보물 확 열어놓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가 고해성사 안에서 대사(大赦)로서 행합니다. 이 은총은 변하지 않습니다. 은총은 항상 같으며,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몸인 유일한 가톨릭 성 교회는 은총을 관장할 권능이 있습니다. 성년에 행해지는 대사를 얻기 위한 조건은 아직도 변함없는가 하고 의구심이 들겠지만; 고해, 영성체, 교황을 지향한 기도 등은 객관적이고 전통적인 것이지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조건을 상기하는 조언 안에서 조차 공의회 혁신에 밀착하라는 의문은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1975년 성년 기간 동안,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에콘의 모든 신학생과 함께 로마에 갔을 당시에, 비록 바오로6세 교황이 칙서에서 기념일을 언급했더라도, 이 행사는 공의회 10주년 기념을 축하하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행사는 우리가 로마 가톨릭 신앙을 공언하고 교황청에 애착하며 베드로의 계승자로서 핵심적인 권능을 쥔 교황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였습니다. 이번 성년 기간에 우리의 존경하는 설립자의 발걸음을 따라서, 이미 1975년과 2000년에 있었던 사례처럼, 이 성년을 축하하기 위한 요구사항으로서 몇 가지 사항이 제기될 필요가 있는 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년의 핵심적인 요소, 즉 주님의 유일한 교회의 중재를 통하여 천주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 회개하는 것에 우리는 집중할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인 핵심과 여건, 이를 둘러싸고 있는 내용과 포장이란 이 두 가지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환경 여건이 본질 핵심을 흡수하지 않는 한, 그리고 현재의 경우에 있어서, 성 교회가 더 이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행한 해악 때문에 성년(聖年)에 대해 교회 마음대로 은총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 포장이 내용을 변경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지는 않고 단지 결함이 있는 포장 속에 주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성년에 속한 은총을 거부하는 것은 손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 교회는 50년 전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어제도 같고 오늘도 같으며 영원히 동일하신“(헤브레야13:8)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하여, 비록 공의회가 영구적으로 변화되는 세상에 문을 열어놓는다 하더라도 그 은총은 현재도 동일하고 앞으로도 동일 할 것입니다.


* 최근의 여러 글에서 보면 신자들로 하여금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하자고 끌어들임으로써 파티마 100주년 기념에 참여하고자 하시는데 왜 그런가요?


이 서한에서 언급한 관점에서부터 그리고 급히 회개하기를 주창하기 위해, 파티마에서 성모님께서 개인과 세상의 회개의 필요성을 너무나 많이 요청하신 것, 보속의 필요성과 기도, 특히 로사리오 기도를 요청하셨던 것과 발현 100주년 해를 진행하기 위해 우리가 초대받은 이러한 유형적(육체적), 영적인 자비의 작업을 우리가 연결하고자 생각합니다.


더욱이, 11월21일 이 축일, 이날은 1074년 르페브르 대주교이 행하신 주요 선언 기념일  – 모든 시대의 성 교회를 위한 우리의 전쟁에 대한 진리의 헌장- 이니, 우리는 모든 환경 가운데서 어려움과 시련이 무엇이든 간에 가톨릭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 교회의 정신을 갖도록, 우리 주님께 충직할 수 있도록, 주님의 거룩한 희생에, 그분의 가르침과 모범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합시다.


어제, “가톨릭 성 교회의 개신교화”를 두려워했던 신앙교리성성장관인 뮐러 추기경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분이 옳습니다. 그러나 모든 시대의 개신교화 된 미사가 아니면, 새미사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전임자들처럼 루터파 교회에 가는 현 교황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2017년 개신교 종교개혁 500주년이 어떻게 준비되고 있으며, 비록 루터가 이교도의 주요 우두머리이자 역사에 있어서 종교분열을 일으키고 로마 가톨릭교회를 격렬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루터라는 인물이 지금 어떻게 칭송되고 있는가를 보면, 이는 여러분 마음을 상실하게 만들기 충분한 거 아닙니까? 진정,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 교회와 가톨릭 교리에 오로지 충직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개혁을 받아드리는 것에 대한 분명한 거절”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대로 보신 것이었으니, 왜냐하면 루터의 개혁과 이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한 개혁 사이에는 공통되는 것 그 이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주교님과 더불어 “어떠한 반란도, 비통함도 또는 분노를 품지 아니하고, 결코 변치 않는 치교권의 보호 하에 우리의 사제직 과업을 추구하며, 거룩한 가톨릭교회에, 교황 성하께, 그리고 후대에 이 이상 큰 헌신을 바칠 수 없으리라 확신하면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친애하는 성 비오 10세회의 형제, 후원자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점을 잘 이해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열렬한 기도, 여러분의 경탄할 만한 관대하심과 끊임없는 헌신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가치 있는 성원입니다. 여러분 덕분에, 르페브르 대주교님의 사업이 모든 곳에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충심으로 이 점에 대해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께 필요한 모든 은총을 달라고 성모님께 기도합니다. 우리는 좋으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을 위해 주님의 축복이 내리도록, 그리하여 거룩한 장림을 통해 위대한 크리스마스 축일을 준비하도록, 그리고 이 축일의 기쁨과 십자기로 다음 해를 천상의 모후께 맡기도록 주님께 청하는 바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 제헌 축일에, 2015년 11월 21일

+ 베르나르 펠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