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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에콘 신학교 50주년을 맞이하여(필레 주교 강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1-01


에콘 신학교 50주년을 맞이하여(필레 주교 강론)


이 강론은 2020년 9월 24일에 전달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구어체를 적용하였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친애하는 주교 각하, 친애하는 총장님, 사제직에 함께 하는 친애하는 동료 여러분, 친애하는 신학생 여러분, 친애하는 수사, 수녀 여러분,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


왜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까?

우리가 오늘 여기에 모인다면, 이는 무엇보다 먼저 - 다음 이유로 말할 수 있습니다 - 이번 달에 우리는 에콘(Ecône) 신학교의 50주년을 축하합니다. 이 의식의 첫 번째 이유는 감사입니다. 이 신학교를 통해 얻은 모든 열매에 대해 선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첫 번째와 비슷한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올해 11월 1일, 우리는 또 다른 희년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1970년 11월 1일 프리부르그(Fribourg) 주교인 몬시뇰 샤리에르(Monsignor Charrière)가 세운 형제회(Fraternity)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를 위해 루르드(Lourdes)에서 아름다운 예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기회에, 하지만 그곳을 통과하고 있는 어떤 바이러스가 우리 인간의 계획을 조금 훼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위대한 순례는 한 국가 규모의 순례로 조금 축소되고, 이 희년의 일부를 오늘 우리가 모으는 정도까지 축소되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당연히 이 기적적인 성비오10세회 사업에 대해 한 달 정도 미리 천주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여러분들 많은 분들이 오늘 여기에 오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것은 르페브르 대주교의 유해를 지하실에서 이 교회의 지하 납골당으로 이전(移轉)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보지만 나는 정말로 방법을 모릅니다. 그들은 이 주제에 대해 모든 종류의 것을 발명하려고 합니다. 사실, 대주교 사후(死後) 몇 년 뒤인 1990년대 중반, 우리가 이 교회를 개발할 때, 이곳 지하 납골당에서 우리의 사랑하는 창립자를 모실 계획이 이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방향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천주님은 무엇을 알고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설립자에게 빚진 경의를 일정 시간 안에 성취한 것이며, 또한 분명히 신자들이 대주교의 무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이날 우리 머릿속에는 많은, 너무나 많은 생각이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무엇보다 먼저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업과 설립자에 대해 천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르페브르(Lefebvre0 대주교께서 진정으로 영웅적인 용기를 가지고 그 당시 교회 전체를 놀라게 한 놀라운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성비오10세회는 실제로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의 성비오10세회입니다.


그리고 대주교는 사실 자기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분의 유일한 관심은 그분이 (과거에) 받은 것을 전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난 세기의 역사를 볼 때, 특히 1950년대 이후, 그리고 물론, 공의회와 함께, 그 이후, 이제 약간의 통찰력으로 생각해 보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르페브르 대주교(Archbishop Lefebvre)의 생각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건대, 천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우리를 위해 원하셨던 영적 명부(Spiritual Directory)라 부르는 이 책을 올해 우리가 가지는 기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이제 끝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을 이끈 아이디어는 – 저는 이것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것은 아주 간단하게 대주교의 말일뿐입니다. 꽤나 간단합니다. 성비오10세회 전체를 요약하고, 이것이 진정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몇 가지 발췌문을 여러분께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사제의 거룩함


“사제회의 정신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모든 ​​정신이다.”

그래서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단지 교회의 정신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영은 무엇입니까?

서약이 없는 공동생활의 사회이자 사제 형제회로서 (로마)교회에서 인정 받은 우리 성비오10세회는 교회의 줄기에 접붙여져 있으며, 교회의 가장 진정한 전통과 그리고 교회 성화(聖化)의 살아있고 순수한 원천에서 성결(聖潔)의 수액을 가져오고, 수 세기에 걸쳐 교회가 인정한 많은 수도단체가 교회의 군대요, 승리한 명예인 방식으로 새로운 지부를 성장시키고 꽃을 피우고 거룩함의 열매를 맺습니다.


모든 성경은 십자가로, 영광의 빛을 발하는 구속 희생자를 향하고 있으며, 그리고 교회의 모든 생활은 희생 제대(祭臺)로 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주요 관심사는 사제의 거룩함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사제들이 거룩한 것처럼 교회가 거룩할 것이라는 깊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신학생들에게 있어, 그들이 예정된 위대한 신비에 대한 끊임없는 발견은 그들의 삶에 매우 특별한 성격을 부여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과 그분의 희생에 사로잡혀서 신학생들은 세상과 허영심, 무익함을 버려야 하며, 또한 그들은 설령 교황이 저들에게 나중에 (신자) 영혼들에게 가라 요청하여도 그들의 사제복, 태도, 침묵과 피정에 대한 사랑으로 이러한 (세속에 대한) 분리를 나타내야 합니다.


교회는 신성한 것을 주는 사람을 양성합니다 : ‘sacerdos,’ that is ‘sacra in,’ '성사', 즉 거룩하고 신성한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Sacrificium,’ that is ‘sacrum faciens.’ 교회는 사제의 '성별(聖別된' 손에 신성하고 성스러운 선물인 '성사(聖事)'를 놓습니다


미사의 가치


성 바오로께서 그의 서간에서 특히 에베소서와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성비오10세회의 정신은 그 무엇보다도 교회의 모든 정신, 즉 성비오10세회의 사제, 수사, 수녀, 수도자, 복자, 제 3회원 등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20세기 동안 교회를 인도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우리 주님의 희생과,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제직에 주는 중요성을 이해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이 위대한 신비인 거룩한 미사를 심화시키고, 이 신비에 대한 무한한 신심을 갖게 하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 모든 우리의 내적 생활의 중심에 이것을 두기 위해, 이것은 교회 정신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며, 따라서 그분이 우리에게 물려 주신 희생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을 깊이 확신한 성비오10세회 회원들은 찔린 예수의 성심에서 태어난 우리 주님의 신비로운 신부가 성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장엄함과 함께 이 귀중한 거룩한 약속을 전달하는 마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비오10세회의 정신 – 반복이 있지만, 저는 일부러 그렇게 합니다 - 성비오10세회의 정신은 본질적으로 갈보리와 미사, “신앙의 신비”라는 구속적 희생의 광채로 비추어지는 사제직의 정신입니다.


우리 신앙의 태양인 이 위대한 신비는 전례 안에서 거룩한 교회에 의해 우리에게 전달되며, 그곳에서 어머니처럼 교회는 훌륭한 전례 주기(週期)에 따라 분배된 행동, 말씀, 성가 및 전례 장식에서 이 신비의 무한한 부요(富饒)를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이 신비로 살기를 열망하는 성비오10세회는 전례에 대한 지식에 열정적으로 애착을 내고, 그그리고 그 모든 아름다움과 화려함 안에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주여, 나 당신의 집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나이다”(성영 25). 성비오10세회의 정신은 전례의 정신입니다.


사제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공개적인 기도를 위해, 희생을 위해 봉헌되었으므로, 성비오10세회 는 성부께 자신과 그분의 모든 신비체(교회)를 제헌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살기 위해 이 모든 심오함에서 이 전례의 정신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전례의 찬란함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찬미합니다. 교회는 마음을 사로잡고 영혼을 고양(高揚)시키는 참으로 신성한 방식으로써 우리에게 어떻게 제시함을 알고, 그리하여 우리가 이 신비를 누리며 살도록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충실한 배우자와 자비로운 어머니의 사랑으로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신성한 장소, 의식, 장식, 성가, 기도의 선택, 미사, 성무일도, 사도직, 전례 안에서 교화됩니다.


성비오10세회 회원들은 교회가 삶의 비할 데 없는 지혜, 신앙, 은총, 금욕과 신비로운 생활인 신성한 전례에서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처럼 이러한 생수의 원천에서 저들의 영성을 키울 것입니다.


그러한 주님과 왕을 섬기는 데는 작은 것도 없고 비참한 것도 없습니다. 항상 우리가 이것을 인식합시다. 그것은 사도직의 매우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전례가 무엇보다도 거룩한 삼위일체에 대한 찬양, 제헌과 희생, 신성한 생명의 근원이라면, 그것은 또한 가장 활발하고 가장 효과적인 교리 교육입니다. 교회의 전례를 사랑하는 영혼을 가진 사제가 있는 신자들은 행복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정신


성비오10세회의 정신은 교회의 정신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 사업에 대한 믿음의 정신입니다. 지난 20세기 동안 교회의 전체 역사는 우리 주님의 영이신 성신에 의해 활성화된 교회의 기본 원리를 나타냅니다.


사제는 영혼의 재탄생, 신성화, 저들의 미래 영광을 위한 이 신성한 사업의 중심에 있습니다. 사제의 모든 생각, 열망, 행동은 이 믿음의 정신에서 영감을 얻어야 합니다. 이제 이 믿음의 정신은 본질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영입니다.


우리 성비오10세회의 모든 구성원이 관상 생활, 즉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단순하고 열렬한 시선, 이 모두가 33년 중 30년을 세상과 분리된 그리스도의 그 모습 안에서 기도의 정신과 내적 생활을 얻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입니까?


우리 삶의 심오한 내적, 영적, 초자연적 측면, 우리 삶의 묵상하는 경건은 이러한 모든 관상 적 기초, 그래서 수도회의 기도 정신, 흔히 기도의 훈련을 정당화 한 것입니다.


봉헌의 정신


그분의 구속적 희생에서 천주께 대한 이러한 접근의 결과는 우리 주님의 오상(五傷)을 받은 특권을 받은 영혼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효과를, 상대적으로 말하면, 성비오10세회 회원들의 영혼에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 효과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조건은 두 번째 조건이고 원천입니다. 다음은 묵상적 측면입니다.


- 신성한 희생자와 연합하여 희생자로서 완전한 봉헌에 대한 열렬한 소망,
- 자기희생에 이르기까지의 천주님, 우리 주님에 대한 사랑,
- 천주님의 거룩한 뜻에 이르는 완전한 항복,
- 꿰뚫린 우리 주님의 성심과의 열렬한 결합


묵상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모습이라면, 이는 영혼을 천주님의 손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In manus tuas commendo spiritum meum”(성영 30 : 6).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의지를 천주님의 손에 완전히 내어 주어야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즉 그분의 거룩한 뜻에 완성된 순명입니다. 천주님과 그분의 권위에 합법적으로 참여하고 이 참여를 정당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내는 의지에 대한 순명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 과정, 즉 질병, 시련의 과정에서 천주님께서 친히 나타내신 좋은 기쁨의 뜻에 대한 순명입니다.... 교회의 이 위대한 가르침을 묵상하고, 우리 삶의 상황에서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시다.


이것은 우리의 큰 겸손을 전제로 합니다. 이것이 겸손이라는 미덕의 진보에 근거한 베네딕토회 영성 전체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묵상, 순명, 겸손은 동일한 현실의 요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고 그분의 무한한 사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나타나고 제대와 성체 성사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는 사랑의 영의 효과는 영혼을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일시적인 것들을 경멸하여 영원한 것에 애착하고, 물질적인 것을 떠나 영적인 것에 애착합니다. 그 영혼은 죄에 대한 큰 공포, ​​자신의 허물에 대한 깊은 통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속죄하려는 엄청난 열망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성부의 영광을 위해 그분의 사랑의 영과 희생자의 영을 우리에게 전해 주신 천주께 감사해야 합니다.


심오한 초자연적인 사도직


성비오10세회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없이도 아주 잘할 수 있는, 우리는 그저 “무익한 종”(루카 17:10)일 뿐이라는 선교사와 사도적 열심의 기초에 놓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쓰고자 하나 그들은 그걸 받을 자격이 없는 영광입니다. 그들인 우리는 항상 천주님에 대한 완전한 무가치함에 머물 것이며, 사도직은 본질적으로 초자연적인 은총의 일이라 오직 그분의 은총만을 신뢰합니다. 이러한 신념으로 무장한 성비오10세회원들은 그들을 기다리는 영혼들, 그들에게 맡겨진 영혼들에게 용기 있게 갈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과 성모 마리아의 도움을 청하면서 “신앙을 가지고, cum fiducia”(에페소 6:19)를 강론할 것입니다.


강론은 단순하고 확신이 있어야 하며, 영혼으로 하여금 천주께로 회두하도록 교화하고 훈련시킵니다. 영혼이 오지 않으면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겸손과 은총을 신뢰하는 열정작인 마음으로 그들을 만나러 나가십시오.


그들은 어떤 형태의 지배나 경멸도 피할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일을 할 것이며, 특정 집단의 거친 언어와 저속한 태도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조차도 우리에게서 단순하고 훌륭하지만, 항상 사제직에 합당한 태도를 기대합니다.


여기에 몇 마디로 - 우리는 계속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이것은 대주교께서 성비오10세회를 설립함으로써 그분의 사제들에게 기대하고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제회"라고 말할 때, 우리가 이번 세기를 다시 한번 볼 때, 엄청난 투쟁과 세상과 교회에서의 혁명, 그리고 이 혁명에 반대하신 르페브르 대주교, 심지어 로마까지, 그리고 물론 지난 50년 동안 역사를 만든 것을 본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요점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항상 전투가 벌어질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전투는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 싸움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시작되었으며, 세상 종말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이 싸움이 끝나면, 더 많은 것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절대 환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성모 마리아의 모범


그러나 여전히, 그것은 저에게 보이는데.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요점이 될 것인즉, 복되신 성모님을 바라볼 것입니다. 복되신 성모 마리아는 이러한 세월을 표시하는 싸움을 바로잡는 아이디어를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축복받은 성모 마리아를 보십시오: 우리가 복되신 성모 마리아를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합니까? 물론 우리는 항상 동정녀를 생각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천주님의 모친이신 그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말할 때 우리는 자비를 생각하고 온화함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사랑, 천주님에 대한 성모님의 전적인 사랑을 교회가 “전투에서 조직된 군대처럼 두렵다”고 칭찬하는 이유입니다. 성모님은 교회가 “모든 이단을 부수는” 분, 악마에게 가장 끔찍한 분으로 칭송되며, 심지어 친히 천주님께서도 “그녀가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 모두 사실입니다!


이 모든 측면은 전투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장 거룩하고 온화하며, 자비로운 성모 마리아에게서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모순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선하신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면, 진실로, 우리가 어떻게 죄를 처리하고, 무엇이 죄를 조장하고, 어떻게 우리가 처리하는지 살펴봅시다. 우리는 천주께 대한 사랑을 먼저 두는가요? 영적 싸움인 이 싸움에서 저들에게 타격을 주는 것보다 타격을 받음으로써 우리가 훨씬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동의합니까?


우리 주님을 보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그분의 구속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한 가지 측면입니다. - 물론 그것은 우리에게 당연히 좋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합시다. - 그리고 얼마나 사실입니까! 다시 한번, 우리는 사람의 작은 실수처럼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굴욕, 모순, 우리의 슬픔, 천주님이 허락하시는 모든 것을 우리 주님과 연합시키고 ...  그것들을 주님의 거룩한 수난에 연합시킴으로써 세상에 의해 완전히 얕잡아 보이게 된 이 모든 행위는 지옥에 대항하는 강력한 가치를 갖습니다. 그리고 또한 파티마의 성모님에 의해 우리를 위해 회상되는 특별한 구원의 가치이기도 합니다. “지옥에 빠지는 영혼이 너무 많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도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희생에 대한 우리의 연합을 요구하는 적절한 미사는 우리에게 이 진리를 상기시켜줍니다. 이 교회는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는 성심에 바쳐졌습니다. 이는 르페브르 대주교의 뜻이었고, 이것을 요청한 사람은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지극히 복되신 성모 마리아는 인도하시는 별이며, 그리고 교회의 온 생활을 이끄신 분을 말한 사람이 바로 그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또는 여러분이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대주교를 성모 마리아의 성심에 바친 이 교회의 지하실로 재결합하는 것이 우리에게 큰 기쁨입니다. 그것은 대주교가 우리에게 주기를 원했던 유산의 일부입니다.


오늘 50주년을 축하하고, 그리고 이 사업이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을 본다면, 우리 주님의 은총에 더해 충실함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일의 100년 그리고 그 이상을 축하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그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대주교께서 우리에게 전달한 것에 대한 이 충실함 안에서 다시 그리고 항상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모든 의도와 모든 걱정과 슬픔을 털어내고 위탁합시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르페브르 대주교의 중보기도를 통해 그것들을 천주님께 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대주교는 일하고 있습니다. 이를 행하십니다! 저를 믿지 않는다면 그냥 시도해보세요. 아시게 될 것입니다.


예, 물론, 우리는 하자 없으신 성심이신 성모님과 그리고 또한 르페브르 대주교께 천주님의 더 큰 영광과 영혼의 구원을 위해 이 충실함 안에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합시다.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 필레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