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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약해천주교요리(略解天主敎要理) - 제7장 성사(4-② 고해성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21

 

 

 

약해천주교요리(略解天主敎要理)

 

 제7장  성사(4- ②고해성사)

 

86. 고해자의 편에서는 사죄를 위하여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고해자의 편에서는 사죄를 위하여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한즉, 통회, 고명, 보속이다.  

 

고해자는 고해성사를 받는 사람이다. 위의 세 가지 조건 중에서 첫 번째인 통회가 제일 중요하다. 정말로 중요해서 그것이 없으면 아무리 하찮은 죄라도 천주께서는 그 어떤 죄도 용서치 않으시려니와 용서하실 수도 없다.


287. 통회란 어떤 것인가?

통회란 정개하고자 하는 굳은 결의와 더불어, 자기 죄로 말미암아 그토록 착하신 천주를 거슬린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통한(痛恨)해 하는 것이다.  

 

'진심으로'는 '마음으로부터', '진지하게'를 의미한다. 통회 혹은 죄에 대한 통한에 대한 천주교회의 교리는 "그것은 비통해 하는 마음이면서 동시에 앞으로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는 결심과 더불어, 범한 죄를 지겨워 함(혐오함)이라는 것이다 . . . . 그 통회에는 죄를 그만 두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의 죄)를 지겨워함이 포함되어 있다."(트리덴티노공의회, 제14회기, 까논 4)  

 

정말로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고 범죄하도록 유인하는 사람 및 장소와 같은 기회를 피하고자 하는 의향이 없으면 진정으로 죄를 뉘우쳐 아파함일 수 없다. 그러므로 죄를 끊으려는 결심을 하지 못하는 천주교 신자는 고해성사를 궐하게 된다. 그런 마음의 상태로 이 성사에 감히 다가간다면 그것은 천주를 시험하고 조롱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죄송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그것은 자기 죄에 대하여 진정으로 유감스러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죄를 뉘우쳐 아파함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자주 현혹하는 것으로, 인간의 느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참된 통한, 즉 진심으로 죄를 뉘우쳐 아파하는 것은 정신 및 의지로써 죄를 지겨워하기만 하면 된다. 즉 천주를 거슬리는 것이 가장 극악한 죄악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토록 착하신 당신을 거슬린 것에 대하여 진정으로 후회하면서 천주의 도우심을 힘입어 장차 죄와 및 죄의 기회를 피하기로 결심하면 되는 것이다.


288. 정개하고자 하는 굳은 결의란 어떤 것인가?

정개하고자 하는 굳은 결의란, 천주의 성총을 힘입어 죄 뿐만 아니라 죄의 위험한 기회까지를 피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굳은 결의란 단지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바람이나 소망이 아니라 더 좋아지고자 하는 실제적이고도 진지한 결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미 보았으되, 과거의 죄로 유인하는 것이면 어떠한 것이든 끊으려는 결심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죄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적어도 사제가 우리에게 그 죄의 기회가 덜 위험한 것이 되게 하라고 충고해 주는 것을 모두 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고해소에서 사제의 임무는 사죄경 뿐만 아니라 충고와 훈계를 해 주는 것을 포함하며, 늘 죄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찌 어찌 해야 한다고 말해 줄 수 있다.


289. 어떻게 해야 죄에 대한 진심어린 통한(痛恨, 죄를 뉘우쳐 아파함)을 얻을 수 있는가?

진심어린 통한을 얻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그렇게 되게 해 주는 동기를 이용함으로써 죄에 대한 진심어린 통한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이 언제나 진정으로 자기 죄에 대하여 후회하고 진정으로 죄를 뉘우쳐 아파함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지독한 술고래 혹은 정결을 거슬리는 죄에 빠져 있는 사람은 천주와 더불어 평화롭도록 그리고 새 생활을 시작하기로 결심함에 있어서 큰 어려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에게 그토록 필요한, 죄를 뉘우쳐 아파하는 심정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해야 한다. 미사성제로써 우리 주께서 직접 그들을 위해 중재해 주시고, 또 미사성제를 드리는 동안에 천주께서 지극히 풍성하게 죄를 뉘우쳐 아파함의 은혜를 주심으로 해서 많은 이가 고해성사를 받기 전에 여러 번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기도에다가 죄가 영혼에 끼친 끔찍스런 손해에 대한 묵상을 덧붙여야 하며, 또 그것이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만들어 주신 천주를 얼마나 심하게 거슬린 것인지를, 그리고 죄중에 있을 때 죽음이 갑자기 덮쳐 와 심판관이신 천주를 마주 대해야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덧붙여야 한다. 교리문답은 다음에 오는 질문에서 그런 묵상거리를 마련해 준다.  


290. 천주께 대하여 어떻게 생각함으로써 죄를 뉘우쳐 아파하게 되는가?

우리 죄로 말미암아, 본디 그리고 우리에 대하여 무한히 착하신 천주를 거슬렸다고 생각함으로써 죄를 뉘우쳐 아파하게 된다.  

 

착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라면 어떤 일이든 거의 다 행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느끼며, 그들의 사랑을 잃었다고 느끼기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천주께 대하여 그런 우호적인 심정을 지닐 수 있는 경우에만, 죄를 뉘우쳐 아파하기 위한 최상의 동기를 얻게 된다.

 

그런 후에야 천주께서 우리에 대해 얼마나 착하신 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천주께서는 우리를 지으시고, 구속하셨으며, 천당을 약속해 주셨다. 가장 좋은 은혜 및 완전한 은혜는 모두 성 야고버께서 말하신 대로 성부께로부터 내려온다.  


291. 구세주께 대하여 어떻게 생각함으로써 죄를 뉘우쳐 아파하게 되는가?

구세주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고, 극악하게 범죄한 자들이 "천주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으며 또한 망신을 시키는 연고니라,"(헤브레아 6,6)라고 생각함으로써, 죄를 뉘우쳐 아파하게 된다.  

 

이는 우리에 대한 천주의 착하심을 보여 준다. 우리 주님은 천주이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쓰라린 고통 속에 죽으셨다. 당신께서는 그 같은 고통을 겪으실 필요가 없었다. 당신이 흘리신 눈물 한 방울, 당신이 행하신 천주의 사랑의 행위 한 가지로도 능히 우리의 죄 및 억만 세상의 죄를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주께서는 그토록 많은 고통을 겪으셨는가? 오로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시기 위해서였다. "세상에 있는 그 제자들을 이미 사랑하시고 또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즉, 사랑의 끝까지)."(요왕 13,1) 당신이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으므로, 우리가 대죄를 범하는 것은 곧 당신의 고통을 조롱하고 그 호소를 거부함으로써 당신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292. 천당을 잃고 지옥에 가게 될 것으로 인해, 자기 지은 죄를 뉘우쳐 아파하면 고해성사를 받기에 넉넉한가?

천당을 잃고 지옥에 가게 될 것으로 인해, 자기 지은 죄를 뉘우쳐 아파하면 고해성사를 받기에 넉넉하다.  

 

이는 죄를 뉘우쳐 아파함에 대한 세 번째 이유, 즉 천주 및 그 벌을 두려워 함, 천당을 잃고 지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함이다. 이 동기는 천주께 대한 덜 완전한 사랑을 포함하고 또 천주의 관심보다는 자신의 관심에 더 향해 있으므로, 이미 말한 것에 비해 덜 착하다. 따라서 천당을 잃고 지옥에 가게 될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통회를 불완전 통회 혹은 하등 통회라 한다. 

 

 그렇기는 해도 그것으로 고해성사를 받고 또 고해성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소죄의 사함을 받기에 넉넉하다. 질문 369번 이하의 소만과에 들어 있는 소회죄경에는 방금 설명한, 죄를 뉘우쳐 아파함에 대한 세 가지 동기가 모두 포함돼 있다.  


293. 상등통회란 무엇인가?

상등통회란 순전히 천주를 사랑함에서 우러나는, 죄를 뉘우쳐 아파함이다.  

 

천주를 위하여 천주를 사랑하는 것보다 뉘우쳐 아파함을 위한 더 큰 동기는 없다(290번을 보라). 그러므로 그런 통회는 완전하다.


294. 상등통회에는 어떤 특별한 가치가 있는가?

상등통회에는 다음과 같은 특별한 가치가 있으니, 고해성사를 받기 전이라도 그로써 죄가 즉시 사해진다. 그렇더라도 대죄인 경우에는 나중에라도 그 죄를 꼭 고명해야 한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성부께 사랑함을 받을 것이요(요왕 14,21)"라고 말씀하셨다. 성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성총지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바로 이 말씀 및 그와 유사한 말씀으로써 천주께 대한 완전한 사랑의 행위 혹은 천주께 대한 완전한 사랑을 전제로 한 뉘우쳐 아파하는 행위에는 고해성사를 받기 전이라도 대죄의 사함을 얻는 놀라운 효험이 있다고 보증해 주신 셈이다.  

 

그래도 그 죄를 고명하고자 하는 소망 및 의향이 있어야 하며 다음 고해성사 때에 그 죄를 실제로 고명해야 한다. 그 근거는 우리 주께서 당신 교회의 성직자 손에 죄 사함을 맡겨 놓으셨고, 죄 사함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고해성사(적어도 의향으로라도)를 만드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죄 중에 있으면서 조난 혹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말미암아 죽음에 닥친 사람은 상등통회의 기도를 발함으로써 자기 영혼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탈출에 성공하게 되면, 다음 고해 때에 상등통회의 기도를 발함으로써 사함을 받은 그 대죄를 고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상등통회의 기도를 알아 두라고 권할 만하다. 여기 짧은 기도문이 있다. "오 내 천주여, 네 지선하심을 인하여, 당신을 거스려 득죄했음을 통회하오며, 나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중죄로 이끄는 것은 무엇이든지 피하겠나이다."  

 

이 기도문에는 기회가 되면 고해성사를 받으려는 소망 및 의향이 표현되어 있지는 않다. 진정한 상등통회의 기도라면 기본적으로 천주께서 우리더러 행하라고 하시는 것이면 모두 다 행할 의향이 포함되어 있으며, 고해는 주께서 가르쳐 주신 바와 같이 행하라고 하신 것 중의 하나이므로, 그 의향을 반드시 공개적으로 표현할 필요는 없다.


295. 고명이란 무엇인가?

고명이란, 주교에 의해 인정된 사제에게 자기 죄를 스스로 고하는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사제들에게 죄를 맺고 푸는 권한, 다시 말해서 사람의 영혼에 관하여 판단하는 권한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이 심판관으로서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죄인이 어떤 일을 했는지 고명하지 않으면, 죄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죄인은 자기 비행(非行)을 스스로 고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야만 사제들이 죄를 맺거나 풀어야 할지, 죄의 정도가 어떠한지, 불의한 행동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지 혹은 필요치 않은지 그리고 천주의 성총의 수단(죄 사함을 준비케 하는 기도문 및 뉘우쳐 아파함)을 더 사용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  

 

무엇을 고명해야 하는가? (1) 양심을 주의 깊게 성찰한 연후에 스스로 죄 있음을 알아내되 아직 죄 사함을 받지 못한, 고의로 범한 대죄. (2) 죄의 성질에 영향을 끼치어 그것을 다르게 하거나 혹은 더 중대하게 하는 연유. 예컨대, 많은 돈을 훔치는 것은 대죄이다. 그러나 천주를 섬기기 위해 교회에 주어진 돈을 훔치는 것은 더 중한 도둑질이 되어 신성 모독이 된다. (3) 할 수 있는 대로, 각 대죄를 범한 횟수. 소죄까지 고명할 필요는 없지만, 소죄를 고명하면 우리의 영혼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소죄만을 가지고 고해성사를 받는 경우에는, 적어도 그들 중 한 가지에 대하여 통회의 기도를 해야 한다.  혹자는 고해성사를 자주 받지 않아서 태만한 천주교 신자라는 인상을 주는 자가 있으면, 그에 대해서 고해성사를 믿지 않는 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 반대이다. 그는 그것을 확실하게 믿지만, 고해성사를 받으러 갈 경우 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신의 생활을 고쳐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고해성사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성사를 믿는다는 증거이다. 그들은 고해성사를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제들이 고명을 듣는 일은 매우 잘 하겠지만, 자기들이 직접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제도, 주교도 그리고 교황 자신도 다른 여느 천주교 신자와 마찬가지로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그들은 인간이어서 죄에 떨어질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아니 오히려 다른 누구보다도 훨씬 더 많이 성사의 성총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매우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며 천주의 성총의 수단(기도와 성사)을 다른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이용해야 한다.


296. 고해성사 때에 대죄를 일부러 숨기는 것은 어떤가?

고해성사 때에 대죄를 일부러 숨기는 것은, 모고해를 함으로 인하여 성신께 거짓을 말하는 것이 되어 크나 큰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천주께 거짓을 말함으로써 그토록 거룩한 제도를 조롱하기보다는 차라리 성사를 받지 않는 편이 더 낫다. 사제를 속일 수는 있어도, 마음의 비밀을 읽으시는 천주는 속일 수 없다. 거짓된 겉치레에 대하여 사제로부터 사죄경을 얻어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천주께서는 그것을 비준치 않으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무가치한 이상으로 악한 것(모고해)이 되는 바, 왜냐하면 사람의 죄가 아직 남아 있고 또 신성 모독의 죄까지 추가되기 때문이다.  

 

수치스러움으로 인해 자신의 가장 악한 죄를 고명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왜 그렇겠는가? 그들은 그 죄를 범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에 자기 영혼을 영원히 잃을 위험을 향해 내달린 것이다. 그러니 겸손한 고해로써 그 죄를 씻고 다시 천주의 벗이 되기만 한다면이야, 어째서 그 죄를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겠는가?  

 

"그러나 사제가 내 생활의 비밀을 알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절대로 더 나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고해자가 모든 것을 몽땅 털어놓고 고명할 용기를 가졌음에 대해 천주를 찬미할 것이다. 사제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기쁨 중의 하나는 가련한 죄인이 천주와 화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자신의 신성한 주재자를 위하여 정말로 중요한 무엇인가를 했다고 느끼게 된다.  

 

사제가 자신의 고해자의 죄를 밝히는 것이 허락되는가? 절대로 아니다. 그는 가장 준엄한 법으로 말미암아 그 죄에 대하여 절대 침묵을 지켜야 하며 천주의 교회에는 그 죄를 알리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의 고통을 겪지 않은 사제가 하나도 없다. 사제들이 고해자의 죄를 밝히라는 명목으로 고발된 때가 많았지만, 밝힌 적은 결코 없다. 말하자면 고해의 비밀에 대한 완전한 신성함은 법정에서도 인정된 것이다.


297. 고명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명을 잘 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를 행해야 함인즉,  

 

첫째, 훌륭한 고명을 하기 위한 성총을 얻도록 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둘째, 양심을 주의 깊게 성찰해야 한다. 셋째, 시간을 내서 착한 통회의 행위를 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넷째, 천주의 도우심으로 죄를 끊어 버리고 앞으로는 새 생활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고해성사를 받는 일이 중요한 문제이다. 어떤 가톨릭 기도서에서든지 고명을 특별히 잘 하도록 돕는 기도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천주십계 및 성교규계에 관한 '양심 성찰'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성찰'을 통해 이미 범했을 온갖 죄를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고해의 준비중에서도 셋째 및 넷째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고해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통회(정개하려는 굳은 결의와 더불어)임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고명이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나, 그것을 결코 무거운 짐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고명은 영혼의 안식을 위한 것이지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러니 누구라도 고명을 잘 할 수 없다거나 몇 가지 죄를 잊어버린다거나 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제는 고해 사제로서의 성무를 수행하기 위해 특별한 훈련을 받으며, 언제나 고해자를 도와서 일이 잘 되게 하려고 애쓴다. 혹 대죄를 잊었으면, 고해자는 다음 고해성사 때에 그것을 고명해야 한다. 그것을 고명하기 위해 일부러 빨리 고해성사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다음 기회에 반드시 고명해야 한다.


298. 속죄란 어떤 것인가?

속죄란 사제가 주는 보속을 행하는 것이다.

 

신자가 자신의 죄를 다 고명하면, 사제는 그의 생활 상태에 따라 특히 피해야 하는 죄가 어떤 것인지 말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는 사죄경을 염해 주기 전에, 보속으로써 어떤 기도를 드리거나 혹은 어떤 일을 행하라고 말해 준다. 그리고 나서 고해자는 통회의 기도를 드리며, 그러는 동안 사제는 사죄경을 염해 주어 고해자의 죄를 사한다.  

 

연옥에 대해서 설명할 때(108번), 죄를 범한 후에 천주께서 그 죄성을 용서해 주셨더라도 보통 천주의 정의로우심에 따른 잠벌이라는 빚이 남으며, 현세에서 그 빚을 다 갚지 못하면 내세의 연옥에서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현세에서 그 빚을 갚기 위한 방법은 고해성사 때에 사제가 주는 보속이다.  

 

그리고 보속이야말로 아마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것인즉, 보속은 성사적이고 고해성사의 부분인 까닭에 그것에는 예수 보혈의 공로가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사제는 범해진 죄의 중한 정도에 따라 보속의 중한 정도를 맞춘다. 대죄에 대하여 타당한 보속이 부과되었는데, 그 보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고해자는 대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299. 사제가 주는 보속이 항상 죄에 대하여 완전한 속죄가 되는가?

사제가 주는 보속이라 해서 항상 죄에 대하여 완전한 속죄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보속 말고도 다른 선행과 나름의 보속을 더하여 대사를 얻도록 힘써야 한다.  특별히 권장되는 세 가지 선행은 기도, 대재 지키기 그리고 애긍시사(哀矜施捨)이다.


300. 대사(大赦)란 어떤 것인가?

대사란 교회에 의해 허락된 것으로, 죄성(罪性)이 용서된 후에도 보통 죄로 인해 남아 있는 잠벌을 사하는 것이다.  

 

'대사'라는 말은 개신교의 귀에는 매우 거슬리는 소리이다. 더 자세히 알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들은 대사에 대해서, 죄를 범해도 된다는 허락 내지는 특허쯤으로 믿는 것이다. 대사는 물론, 그런 종류가 아니다. 대사는 죄가 사해진 후에 남아 있는 잠벌 중 전체 혹은 일부를 사하거나 면제하는 것이다. 회개에 의해 죄가 용서될 때까지는 대사를 얻지 못한다. 죄에는 두 가지, 즉 그 죄성과 그 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107번을 보라).  

 

죄인이 몇 가지 기도를 드리거나 선행을 행한다는 조건 하에서 대사가 허락된다. 교회 초기에 죄인들은 자기 죄에 대해 매우 심한 보속을 공식적으로 해야 했다. 예컨대, 도둑은 2년의 보속이라는 벌을 받았다. 배교자나 냉담자는 죄를 기워 갚기 위한 보속을 행하느라 여생을 다 보내야 했다. 이로써 당시의 죄에 대한 견해가 얼마나 진지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신앙 때문에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불쌍한 죄인에게서 보속 중 얼마를 면제해 달라고 주교에게 청원하곤 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항구한 순교에 대한 보답으로, 주교는 그 요청을 허락하곤 했다. 나중에 박해가 그치자, 다른 선행을 행하는 조건 하에서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이 통례로 남게 되었다.  

 

이는 8세기와 12세기 사이에 통상적인 관례가 되었다. 그런즉 요크의 주교, 에그버트의 고해 규정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을 수 있다. "고해 규정서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대로 따를 수 있으되, 어쩔 수 없는 이를 위해 천주의 자비로운 권고를 주노라. 하루 내내 빵과 물만을 취하는 대신 장궤한 상태에서 50곡의 성영을 창하거나 혹은 장궤하지 않고 70곡의 성영을 창할지니라 . . . . 그러나 성영을 모르고 또 대재를 지킬 수 없는 이에게는 1년 동안 계속해서 빵과 물을 취하는 대신 시사(施捨)함으로 베풀되 26가지의 고형식을 주라고 할 것이요, 각 주간 평일 중에서 하루를 계속해서 9시과(課)까지 또 하루를 계속해서 만과(晩課)까지 대재를 지킬 것이요, 사순절 중 3주 동안을 자기가 받은 것의 반을 시사(施捨)함으로 베풀지니라." 때로는 우리의 첫 순교자인 성 알바노 성당, 혹은 로마나 스페인의 콤포스텔라에 있는 성 야고버 성당을 향한 성지 순례가 보속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런 완화 및 '속량'이 대사의 형태인 동시에 대사의 역사적 발달의 일부를 이룬다고들 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그것들은 우리가 뜻하는 그 대사는 아니다. 우리 식의 대사는 11세기의 교황에 의해서 허락되기 시작했다.  

 

교회에 의해서 허락된 대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전대사(全大赦)와 한대사(限大赦)이다. 전대사는 죄로 인한 잠벌을 전부 사한다. 모든 죄 및 죄에 대한 애착에서 절대로 자유로워야 했으므로 전대사를 얻기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영혼에 죄성이 있는 한, 그에 따른 벌이 버티고 있으며 그 벌에서 떨어질 수 없다.  

 

전대사를 얻기 위해서는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함과 동시에 교회에서 부과하는 다른 조건을 채워야 한다. 한대사는 죄로 인한 잠벌 중 일부를 사한다. 그것은 며칠 혹은 몇 년의 한대사라는 말로 표현되고 또 그런 의미로 이해됨인즉, 한대사를 얻으면 교회 초기에 부과한 그 숫자만큼의 날수 혹은 햇수의 보속을 행한 것만큼을 면제받게 된다. 한대사에는 전대사와 같은 완전한 조건이 필요치 않다. 한 대사 역시 우리 영혼에 대죄가 없어야 한다.  

 

교회는 이토록 놀라운 힘을 누구에게서 얻어내는가? 설립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얻는다. 당신은 성 베드로에게, "네가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맨 것은 하늘에서도 맬 것이요 네가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푼 것은 하늘에서도 풀리라,(마두 16,19)"라고 말씀하셨다. 그로써 당신은 성 베드로 및 그 후계자들에게 신자들이 천당에 가는 데 방해가 되는 어떤 것에서든지 벗어나게 해 줌으로써 천당에 이르도록 돕는 힘을 주셨다.  

 

그것은 죄성 및 벌에 있어서의 죄에 대한 권한이니, 사람이 천당에 이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바로 죄이기 때문이다. 베드로 및 그 후계자들에게는 고해성사에서 주는 사죄경으로써 죄성 및 영벌을 사해 주는 권한이 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대사라고 알고 있는 면제를 위한 허락으로써 잠벌에 대한 권한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타당한 속죄를 천주께 드리지 않으면 죄의 벌은 대사로써 사해지지 않는다. 교황은 그 속죄를 교회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되, 사람이 되신 천주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속죄 및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의 누적된 속죄로부터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 주님의 속죄는 무한하시니 천주이셨기 때문이요, 지극히 거룩하시고 무죄하신 고로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는 아무런 죄도 없으신 까닭에 전 생애를 통하여 천주께 드려진 축적된 속죄는 성모 마리아 자신에게는 전혀 필요치 않다. 성인들은 죄를 범하셨고, 그들 중 어떤 이는 회개하기 전에 큰 죄인이셨으나(예컨대, 성 아우구스띠노), 고행의 생활로써 천주께 드린 속죄는 자기에게 필요한 양을 채우고도 남는 것이어서 천주의 배려로 우리를 위해 사용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천주께 연결돼 있는 속죄가 한없이 모아져 있는 것이다. 그 한없이 모아진 속죄가 우리를 위해 이용될 수 있음은 성모 마리아, 성인들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우리는 모두 성인의 통공으로써 결합되어 있다(102번, 기타 등등을 보라).  

 

연옥에 있는 영혼들도 역시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도 대사를 얻어 줄 수 있는 성인의 통공의 일부이다. 그러나 산 이를 위한 대사는 교황이 자신에게 있는 열쇠의 권능을 가지고 발휘하는 것으로, 벌을 없애는 직접적인 행위인 반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한 대사는 그들을 위해 교회가 제공하는 기도이다. 교황은 지상에서만 교회의 우두머리이므로,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해서는 교황이라 해서 면제의 권능을 직접 발휘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