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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약해천주교요리(略解天主敎要理) - 제7장 성사(3-② 성체성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21

 

 


약해천주교요리(略解天主敎要理)

 

제7장 성사(3-② 성체성사)
  

274. 성체성사는 성사이기만 한가?

성체성사는 성사이기만 하지 않고, 제사이기도 하다.


275. 제사란 무엇인가?

제사란 천주가 만물의 대 주재자이시라는 증거로, 사제에 의해서 천주께만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다음에 오는 질문을 보라.


276. 새 법의 제사란 어떤 것인가?

새 법의 제사란 미사성제이다.  

 

우리는 성체를 성사로서 고찰했다. 성체는 주님 자신이므로 가장 위대한 성사이다. 이제 주님이 그것을 세우신 둘째 목적, 즉 그리스도인의 흠숭 행위에 이르렀다. 미사가 의미하는 것이 흠숭 행위이다. 천주는 항상 제사로써 흠숭받기를 원하신다.  

 

인류 역사 초기에 가인과 아벨은 천주께 제사를 드렸다--한 사람은 땅에서 난 곡식을, 다른 사람은 양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제물로 드렸다(창세기 9장). 홍수가 있고 나서 노아는 방주 밖으로 나와, 천주의 명에 따라 제단을 쌓고 방주 안에 있던 새와 들짐승 가운데서 번제물을 골라 천주께 제물로 드렸다(창세기 8,20). 멜키세덱은 빵과 포도주로 제사를 드렸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천주를 섬기는 사제였다."(창세기 14,18)  

 

모세의 법에는 네 가지 종류의 제사가 있었다. 모두 천주께서 명하신 것인즉, 번제, 감사제, 속제 그리고 기원제이다. 이들 제사는 사람이 천주께 대한 네 가지 큰 의무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세워졌다. 번제(전부 태워서 드림)는 천주께서 최고의 주님이시면서 주재자이심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감사제(평화를 드림)는 천주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뜻으로 드리는 것이었다. 속제(진정시켜 드림)는 죄의 용서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기원제(청원함)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온갖 강복을 청하는 것이었다.  

 

이들 제사에는 제물과 제물을 드리는 사제가 있었으며, 그 행위는 오로지 천주를 흠숭하고, 천주께 감사하며, 천주께 죄에 대한 보상을 드리고, 천주께 영육 간에 필요한 온갖 것을 청하기 위해서 천주께만 향해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물론 천주께 대하여 같은 의무가 있다. 천주는 그런 의무가 구약에서와 같이 제사로 채워질 것을 원하시며, 그리스도교의 제도에 있어서 지금도 그렇다. 유데아인의 제사는 앞으로 올 것의 형식이요, 형상이었다. 그래서 예언자 말라기아(1,10·11)는 유데아인의 제사가 폐지되고, 다른 제사(깨끗한 제물)가 그 자리를 대신하리라고 예언했다.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너희가 바치는 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나의 이름은 해뜨는 데서 해지는 데까지 뭇 민족 사이에 크게 떨쳐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부르며 향기롭게 제물을 살라 바치고 깨끗한 곡식 예물을 바치고 있다.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내 이름은 뭇 민족 사이에 크게 떨치고 있다."  

 

이상 예언자의 말씀은 채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현재 정결하고, 깨끗한 제물이 존재하게 되었다. 온 세상을 훑어볼지니 이방인을 포함한 이 세상에서 봉헌되는 것으로 그런 제사를 지적할 수 있을까?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천주교회의 흠숭 행위인 미사이다. 미사는 세계 곳곳 어디서든지 드려진다. 그리고 그것은 깨끗한 제물인즉, 이는 곧 설명하게 될 것과 같이 갈바리아의 정결하고 거룩한 제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피 흘림이 없는 방식으로 다시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277. 미사성제란 어떤 것인가?

미사성제란 제대 위에서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해 천주께 드려지되, 면주의 형상 안에 실제로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제사이다.  

 

우리 주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당신의 몸으로,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변화케 하시고는 종도들에게 당신을 기억하여 똑같이 행할 것을 명하시면서 미사를 제정하셨다. 그 때에 사용하신 말씀은 미사가 제사임을 나타낸다. "이는 내 몸이요, 너희를 위하야 주는 것이니"(루가 22,19),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릴바 내 피로써 세운 신약이니라."(루가 22,20) 사람을 위해 드리게 될 몸은 사람을 위하여 제사로써 드리게 될 몸을 의미한다. 사람을 위해 흘리게 될 피(성 마두께서 그것을 기록했듯이 "죄 사함을 위하여")는 천주께 대한 속죄의 제사를 의미한다.  

 

우리 주께서 우리를 위해 실제로 당신 몸을 드리시고 당신 피를 흘리신 것은 바로 갈바리아의 십자가 위에서였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에서 행하셨던 것 및 우리에게 똑같이 행하라고 하신 명령으로써 당신은 결국 미사가 갈바리아의 계속, 즉 세세 대대로 도처에서 그 제사를 다시 드릴 것을 의도하셨다.  

 

그리하여 미사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참말로 죽지 아니하시고 피를 흘리지 아니하시더라도, 마치 죽음을 당하시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존재하시게 되니, 말하자면 축성경이 사제에 의해서 소리내어 읽혀진 후에는("이는 내 몸이니라, 이는 내 피의 잔이니"),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서로 분리됨이요, 몸과 피의 분리되었다 함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 바오로는 "대저 너희는 주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면병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저의 죽으심을 보하리라,"(코린토전 11,26)고 쓰면서 그에 대해 언급한다.  


278. 미사성제는 제사인 동시에 십자가의 제사와 똑같은 제사인가?

십자가 위에서 천상에 계신 당신 성부께 피흘리는 제물인 자기를 드리신 그리스도께서, 사제의 집전을 통하여, 제대 위에서 피흘림이 없는 방식으로 자기를 드리기를 계속하시는 까닭에, 미사성제는 제사인 동시에 십자가의 그것과 똑같은 제사이다.  

 

십자가 위 및 미사에는 똑같은 제물,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 우리는 십 자가의 제사로써 구속되었다. 미사의 제사로써는 영혼에 대하여 그런 구속이 적용되며 천주께 대한 네 가지 기본 의무를 충족시키는 수단을 제공해 준다(279번을 보라). 십자가 위 및 미사에는 또 똑같은 사제가 있다. 십자가에서 자기를 드리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미사의 제1봉헌자이기 때문에, 빵과 포도주의 제사가 성체성사를 상징했던 멜키세덱의 제도에 따라 영원토록 사제이시다(성영 110,4·헤브레아 5,5).  

 

십자가와 미사 사이에는 차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봉헌하는 방식이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주님은 정말로 피를 흘리고 죽으셨다. 미사에서는 피를 신비적으로 흘리시며, 외형적으로 정말로 죽지는 않으시고 오직 신비적으로만 죽으시며, 외형적으로는 두 번의 축성에 의해서 당신을 죽음의 상태에 놓이게 한다.  

 

한 마디만 더 해야겠다. 우리는 종종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가운데서 제사의 양식과 같은 것을 찾는 헛된 일을 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친교의 예식이 있기는 하다. 한 때 천주교였던 영국에서 그리스도인다운 흠숭 행위였던 미사의 유산인 것이다. 혁명가들은 미사를 폐지하고는 그것에 대해 '불경한 우스꽝스러운 짓'이라고 하면서도 그 자리에 아무런 흠숭 행위로도 바꿔 놓지 않았다.  

 

제사가 없는 곳에는 사제가 있을 수 없으며, 제사도 사제도 없는 종교는 그리스도교일 수 없다. 영국 국교의 신자들은 지금 로마식 미사경본의 영어판을 사용하여 자칭 '미사'라고 하는 것을 봉헌한다지만, 공식적으로 그들이 성직자인 영국의 교회는 미사를 우스꽝스러운 짓이라고 한다. 300년도 더 전에 그들이 지금 자행하고 있는 일을 했다면, 그들은 우리의 천주교 사제들이 당했던 것처럼 교수형을 당하고 질질 끌려져 토막이 났을 것이요, 종교 당국은 그들의 머리를 런던교에 내걸었을 것이다.  


279. 미사성제는 어떤 목적을 위해 드려지는가?

미사성제는 네 가지 목적을 위해 드려진다. 

 

 첫째 천주께 최고의 영예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  

둘째 천주의 온갖 은혜에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셋째 우리의 죄에 대한 보속을 천주께 드리고 회개의 성총을 얻기 위하여,  

넷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른 온갖 은총과 강복을 얻기 위해서이다.  

 

질문 276번에서 유데아인에게는 네 가지 종류의 제사가 있어서 천주께 대한 인간의 네 가지 의무를 채웠음을 알았다. 미사는 그 모든 제사를 대신하며, 성부께 그리스도를 드림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천주께 대한 네 가지 의무를 채우고도 남게 한다.  

 

따라서 미사로써는 (1) 천주께 정말로 흠숭을 드릴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드림은 천주께 최고의 영예와 영광을 드리는 것인 바, 예수께서 우리의 흠숭을 받아 주시며 그것을 당신의 것에 합해 주시어 천주께 의합한 것이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주께 의합한 감사를 드릴 수 있다.

(3)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이용하여 자신의 죄에 대한 참된 통회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4) 다음과 같은 말씀에 따라서 주님을 통하여 온갖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너희가 만일 내 이름을 의지하야 성부께 무엇을 구하면 너희게 주시리라."(요왕 16,23) 그리고 그것이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라고 하면서 기도를 끝마치는 이유가 된다.  

 

이제 나는 죄의 고통 중에서 주일 미사 및 모모한 다른 날의 미사에 참례하라고 하는 이유를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천주를 경배하고 흠숭해야 하기 때문이며, 미사는 그런 목적을 위해 당신이 정해 주신 수단이기 때문이다. 미사에 참례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천주를 흠숭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용서를 청하며, 우리가 당신께 달려 있음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280. 미사는 우리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기억하는 것이기도 한가?

미사는 우리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기로 이 예를 행하라,"(루가 22,19)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미사 동안에 축성경에 덧붙여 읽혀지는 경문(기도문) 및 사제가 여러 차례 긋는 십자성호는 정신적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간직하게 한다.  

 

언어, 미사에서 사용하는 라틴어는 비가톨릭 신자에게 수수께끼가 되는 일이 빈번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 한 두 가지만 설명하겠다. 라틴어 및 그 어휘의 뜻은 변치 않는다. 예컨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언어를 보면, '경배'라는 용어는 보통 천주께 대한 경배, 당신께만 드려지는 영예에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한 때 그것은 단지 존경 혹은 경의만을 의미했었으며, 현재 사용되고 있는 어떤 표현에서는 아직도 본래 의미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혼배 예식에서 신부는 신랑에게, "나는 내 몸으로써 그대를 섬기나이다"라고 말하며, 판사 및 시장에게는 '각하'라고 칭하기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톨릭 신자가 해외에 갈 때면 자기 나라에서 드리는 미사와 똑같은 미사를 발견한다. 그가 방문하고 있는 나라의 언어를 한 마디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자기 교회에서와 같이 쉽게, 마음 편히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 미사가 자기 나라의 언어로 드려진다면 어떤 혼란이 생길까!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종족의 갖가지 언어를 생각해 보라.  

 

평신도더러 기도서와 개인용 미사경본을 사용하라고 점점 더 적극적으로 권장되는데, 원래 천주교 전통의 기도서 및 특히 평신도를 위한 작은 미사경본을 보면, 사제가 집전하고 있는 미사를 따라가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도록 라틴어와 함께 옆옆이 자기 나라의 언어로 번역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