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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약해천주교요리(略解天主敎要理) - 제7장 성사(3-①성체성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21

 




약해천주교요리(略解天主敎要理) 

 

제7장 성사(3 - ①성체성사)
 

266. 성체성사란 어떤 것인가?

성체성사란 면주 형상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천주성이 함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성사에 이르렀다. 천주교 신자라면 주께서 천당에 실제로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성사 안에 몸과 피, 영혼과 천주성, 즉 우리 주님이 정말로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심을 믿는다. 천주교 신자는 그 실재에 대하여 절대로 갖가지 견해를 주장하지 않는다. 예컨대, 성공회의 교리문답집에서는 어린이에게 "성사의 내부 혹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주님의 만찬에 대해 말하면서). "주님의 만찬에서 신자들에 의해서 정말로 받아들여지고 영해지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답이 주어진다.  

 

다시 말하면, 공동기도서에 있는 영성체 예식에서는 영성체가 있기 직전에, 성직자는 신자들의 이름으로 말하기를, "그러므로 인자하신 주여, 우리 죄 많은 몸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깨끗하여지고 우리 영혼이 당신의 보혈로 말미암아 씻겨질 수 있도록, 친애하는 당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기를 허락하소서." 성체를 분배하면서 성직자는 "그대에게 주어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그대의 몸과 영혼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실지어다,"라고 말한다.  

 

이 경문은 실재하심에 대하여 가톨릭적인 의미를 철저하게 품고 있다. 그러다가 바로 그 공동기도서중 영성체 예식 가운데 끝 부분의 예배 규정(흑색 예배 규정으로 알려진)에서는 가톨릭적인 의미의 실재하심을 노골적으로 부인한다. 예배 규정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라도 예의 장궤하는 것을 곡해하여 욕하지 않도록 . . . 영성체자는 장궤하면서 받아야 함 . . . 이 규정된다. 그에 따라서 육체적으로 영해지는 성사의 빵이나 포도주에 대하여, 혹은 그리스도의 자연적인 살과 피의 육체적인 존재에 대하여 그 어떤 경배심도 품어서는 안됨은 물론이요, 경배해도 안 된다고 선언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성사의 빵과 포도주가 바로 그 자연적 실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음으로 해서 자연적 실체인 빵과 포도주를 경배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 . . 그리고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의 자연적인 몸과 피는 천당에 계시며 이 곳에는 계시지 않다. 한 곳보다 더 많은 장소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자연적 몸에 관한 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설명을 함께 다루는 것으로 미루어, 그것들이 완전히 모순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라면, 성공회 신자에게 있어서 성사 안에 그리스도의 몸이 존재하는 것이란 실제적 내지는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영향력에 의한 존재, 일종의 영적인 방식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믿음에 의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빵은 빵으로 남아 있고 포도주는 포도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 믿음은 신약에 있는 우리 주님 말씀의 알기 쉽고 명쾌한 의미에 반대된다. 

  

성 요왕 복음에서(5장) 우리 주께서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과, 당신께서 어떻게 바다 위를 걸으셨는지를 읽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말씀해주신 그리스도의 긴 이야기는 다음과 같으며, 그 중 대부분이 성체성사에 대한 약속을 포함하고 있다.  

 

가파르나움에 돌아오신 후, 우리 주께서 사람들 곁에 계신 것이 발견된다. 당신께서는 그들을 크게 질책하신다. "나 진실히 진실히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음은 영적을 본 연고가 아니요 오직 떡을 먹고 배부른 연고로다. 너희는 썩어질 음식을 수고들여 구하지 말고 오직 영생토록 보존하는 음식을 구하라. 이 음식은 인자 너희게 줄 것이니."(26절) 여기에는 보통 음식을 훨씬 초월한 음식--그들에게 영생을 줄 음식을 주시리라는 우리 주님의 약속이 있다.  

 

유데아인들은 천주의 일을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대답에서 우리 주님은 당신께 대한 신앙을 알려 주신다. 주께서는 그들의 신앙을 요구하신다. 그들은 전날 행하신 기적을 잊은 채, 그 주장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표시를 요구한다. 그들은 주님께 사막에서 얻었던 만나를 상기시켜 드린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 온 빵이라 일컬어졌었다. 우리 주님은 만나는 정말로 하늘에서 내려 온 빵이 아니며, 성부께서 하늘에서 내려 온 진짜 빵을 주시리라고 대답하신다. 

 

 매우 기뻐하면서 유데아인들은 하늘에서 내려 온 그 새로운 빵을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한다. 그러자 예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35절)라고 분명하게 잘라 말씀하신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수수께끼여서, 원망하여 서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이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우리가 저의 부모를 다 아는데 그러면 이사람이 어찌 이르되 '하늘로조차 내려왔노라' 하는고?" 예수께서 그들이 원망함에 대하여 부드럽게 질책하시고, 한 번 더 당신께 대한 신앙의 필요성을 강조하신 후, 아주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48절). "나는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조차 내려온 떡이매 하여금 누구든지 만일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아니케 하나니 나는 하늘로조차 내려온 생활한 떡이로라. 누 만일 이 떡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요 또 세인을 살리기 위하야 내가 줄바 떡은 곧 내 살이니라."  

 

유데아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 들였다.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게 주어써 먹게 하리오? 우리 주께서는 그들에게 해주신 말씀의 뜻을 고치지 아니하신다. 주께서는 "너희는 내 말을 잘못 이해한다,"라고 말하지 아니하신다. 오히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반복하여 설명을 보강하신다. "나 진실히 진실히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그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게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나 또한 끝날에 저를 부활케 하리니 대저 내 살은 진짓 먹을것이요 내 피는 진짓 마실 것이니 . . .". 이 마지막 설명이 얼마나 자세하고 또 분명한지를 주목하라.  

 

유데아인들은 당신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았다. 당신은 그들에게 의심할 여지를 남기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질다 이 말이여 누 참아 들으리오?" 그들 중 많은 이가 당신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물러가매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게 버려 두셨다. 당신의 진정한 살과 피가 아니고 당신 살과 피의 형상만을 받게 하고자 하신 것이라면, 잘못된 의미로 인해 그들이 당신을 떠나게 버려 두지 않으셨을 것임에 틀림없다. 말씀이 잘못 이해될 것 같으면 직접 해명해 주시는 것이 주님의 관례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들을 다시 불러들이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신이 택하신 십이 종도들을 돌아보시며, 역시 물러가고자 하는지를 물으셨다. 마치 "내 말로 인해 내가 너희를 잃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내 말은 변치 않는다,"라고 말씀하시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종도들의 대표이면서 지도자인 성 베드로가 신앙의 행위를 했다. "주 영생의 말씀을 가지셨으니 우리 등이 뉘게로 가겠나이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천주성자심을 우리 등이 이미 믿고 알았나이다."(69, 70절)  

 

주께서는 가파르나움에서 약속하신 바를 최후의 만찬에서 이루셨다. 성 루가의 복음에서(22,9-20)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다. "또 면병을 가지사 사례하신 후 저들에게 떼어 주시며 이르시되 '이는 내 몸이요 너희를 위하야 주는 것이니 너희는 나를 기억하기로 이 예를 행하라' 하시고 저녁을 잡수신 후에 또한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너희를 위하야 흘릴바 내 피로써 세운 신약이니라'."  

 

이제 성 바오로의 코린토인에게 보내는 첫 번째 서간으로 돌아가 보자(11,23-25). "대저 나 너희에게 전한바는 주께 받았나니 주 예수 붙이움을 받으시든 날 밤에 면병을 가지사 사례하신 후 이를 떼시며 가라사대 '너희는 받어 먹으라. 이는 너희를 위하야 바칠바 내 몸이니 너희는 나를 기억하기로 이 예를 행하라' 하셨나니라. 저녁을 잡수신 후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가지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에 있어서의 새로운 언약이니 너희는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기로 이 예를 행하라' 하시니라." 성 마두도 마찬가지다(26,26-28). "너희는 받아 먹으라. 이는 내 몸이니라 . . . . 너희는 다 이것을 마시라. 이는 새로 언약하는 내 피니 많은이를 위하야 죄사하기로 흘릴 바니라." 그리고 성 말구도(14,22-24) "이는 내 몸이니 받아 먹으라 . . . . 이는 새로 언약하는 내 피니 많은 사람을 위하야 흘릴 바라." 이상은 건립성체에 관한 네 가지 이야기다. 

 

 여기에 성 바오로의 다른 말씀을 덧붙일 수 있다. "우리가 축성하는 축성의 잔은 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혈과 일체됨이 아니뇨. 우리가 떼는 면병은 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일체됨이 아니뇨?"(코린토전 10,6)  

 

우리 주께서 그보다 더 분명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을까? 당신의 말씀은 명쾌하고 또 분명하다. 당신은 아주 단순하게 말씀하신다. "이는 내 몸이니라." 다음과 같이 말씀하지 않으신다. "이는 내 몸의 형상(혹은 내 몸의 상징)이니라." 당신이 말하고 계신 대상이던 종도들은 평범한, 즉 주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말씀을 글자 그대로 뜻하신 것이 아니라면, 주께서는 그렇게 말하셨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그들을 속이고 계신 것이며, 그들뿐만 아니라 당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 들여서 천주께만 드려야 할 흠숭을 성체께 드리는 사람들을 세세 대대로 속이고 계신 것이다--천주이시므로 모든 것을 다 아셨던 당신이 사람들로 하여금 엄청난 우상 숭배를 하도록 허락하시거나, 오히려 유도하신 것이리라. 당신이 막 죽게 되시어 모든 것을 분명히 하고자 주의를 다 하셨을, 당신의 생애 중에서 가장 숭고한 그 순간에 말이다.  

 

독일에서 혁명의 아비인 마르틴 루터 자신이 기술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너무나 분명하다. "헛되게도 나는 교황 절대주의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괴롭힐 목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실재하심을 부인하고자 했지만, 그러나 내가 대담한 편법을 채택하려는 마음을 결코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성경의 말씀은 너무도 분명하고 강력하게 신비의 편에 있었다"(서한. 카르. 아미코-car. amico).  

 

우리 주께서 "이는 내 몸이니라,"고 하셨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천주로서의 전능을 사용하셔서 빵을 당신의 몸으로 변화케 하셨다. 당신은 그 맛이나 질감 혹은 모양을 바꾸지는 않으셨다--이는 우리가 형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형상은 그대로 남겨 놓으시고 빵의 실체를 당신 몸의 실체로, 물질 그 자체를 바꾸셨다. 당신이 말씀하신 후에도, 계속해서 빵처럼 보이고 또 빵의 맛을 지니고는 있되 내적인 본질에 있어서는 더 이상 빵이 아니고 당신의 몸인 것이다.  

 

이렇듯 빵의 실체에 있어서 우리 주님의 몸의 실체로의 변화, 유례가 없는 변화를 우리는 성변화라고 한다. 바로 이미 말한 그 뜻이다. 그것만이 실재하심에 관하여 있을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해명이다. 그리고 헨리 8세는 미사와 실재하심에 관한 한, 확고한 신봉자여서 성변화를 부인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을 죽음에 부쳤다. 

 

267.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가?  

그 어느 것도 불가능하거나 어려울 것이 없는 천주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


268. 빵과 포도주가 언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가?

미사성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축성경을 사제가 소리내어 읽을 때,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



사제가 사용하는 축성경은 다음과 같다.



"이는 내 몸이니라", "대저 이것은 곧 내 피의 잔이니라. 이는 새로 맺는 영원한 언약의 피니--신덕의 오묘함이여--너희 많은 이를 위하여 죄 사하기로 흘릴 바니라." 이상은 복음 사가 및 성 바오로의 기록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임을 주목하라. 온전하게 신품성사를 받은 사제가 첫 문장을 입 밖으로 소리내어 읽는 즉시, 빵의 실체가 우리 주님의 몸의 실체로 변화된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을 소리내어 읽는 즉시, 포도주의 실체는 당신의 피로 변화된다. 첫 번째 경우의 경문은 오로지 몸에 해당되고, 두 번째 경우의 경문은 오로지 피에 해당된다. 그러나 성 바오로께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 죽은자 가운데로 조차 부활하사 다시는 죽지 아니시며 다시는 죽음이 저에게 아무 권력도 가지지 못함."(로마 6,9) 그러므로 축성경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는 당신의 몸과 함께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과 천주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성체성사로써 생활하신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다.


269. 그리스도께서는 어째서 성체성사로써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영혼의 생명과 양식이 되시기 위해서 성체성사로써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다.



"나를 먹는 자도 나를 말미암아 살리라",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왕 6,58·59)


270. 어떤 형태로든 그리스도께서 전체로 온전히 영해지는가?

어떤 형태로든 그리스도께서 전체로 온전히 영해진다.



프로테스탄트들이 우리를 반대하는 큰 반론 중 하나는 잔(역자 주: 성작)이 평신도에게는 주어지지 않으며, 그들에게 잔이 주어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축성 후에는 성체성사로써 온전히 생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빵의 형상 혹은 포도주의 형상 안에 존재하신다고 한 268번을 보았다. 그러므로 단형(單形) 영성체(역자 주: 성체 혹은 성혈 한 가지만을 영함)로 영하더라도 그리스도를 전체로 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론, 우리 주께서 직접 그렇게 하라고 명하시지 않는 한, 굳이 양형(兩形) 영성체로써 영할 필요가 없다.



우리 주님은 사실상 그런 명령을 하지 않으셨다. 최후의 만찬에서 몸과 피 둘 다를 종도들에게 주시면서, 피에 대하여 "너희는 다 이것을 마시라",고 말씀하셨을 때, 당신이 말씀하고 계셨던 것은 사제들을 향한 것이었으니, 그 이유는 그 순간에 종도들을 사제로 삼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제들은 항상 자기가 미사를 드릴 때에는 주님 말씀에 따라서 양형으로 영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주님은 평신도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으셨다.



성체성사를 약속하시면서 "누구든지 만일 이 떡을 먹으면"(여기서 잔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죽지 아니케 하나니"(요왕 6:51), 또 "세인을 살리기 위하야 내가 줄바 떡은 곧 내 살이니라,"(요왕 6:52)라고 말씀하셨다.



성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매우 분명하게 말했다(코린토전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치 않게 이 면병을 먹거나 주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의 죄인이 되리라". 영국의 혁명가들은 영성체에 관하여 양형으로 하는 자기들 견해에 맞추기 위해서 이 구절에 있는 천주의 말씀을 인가된 성서 번역본에서 "먹거나 마시는"을 "먹고 마시는"으로 바꿔 놓았다. 개정판에서는 그것을 본래의 원본대로 바꿨다. 

 

그러므로 잔을 사용하는 것은 교회의 결정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12세기까지는 양형으로 영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렇기는 해도 초대 그리스도교 때부터 예외가 있었다. 박해 동안에 그리스도인들은 성체를 자기 집에서 빵의 형태로 보관하고 또 서로 나누었다. 환자들은 때때로 빵의 형태로만 혹은 질병의 성격에 따라서 포도주의 형태로 영성체를 하였다. 어린이들은 성세성사 후에 포도주 한 방울의 형태로 영성체를 하였다.



상당한 이유로 인해 오래 전에 확립된 교회 예절에서는 평신도에게는 잔을 주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 상당한 이유란 다음과 같다. 흘림으로써 거룩한 성사를 모독할 위험--박약아 및 어린이로 인한 진짜 위험,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영성체하는 데 필요한 포도주를 충분히 얻어야 하는 어려움, 많은 이가 공동의 잔에서 마셔야 하는 것에 대해 가지는 혐오감, 기타 등등이다.


271. 거룩한 성사를 타당히 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룩한 성사를 타당히 영하기 위해서는 성총지위에 있어야 하고 공심재를 지켜야 하되, 물은 공심재를 깨뜨리지 않는다.



이는 다음에 오는 질문에서 설명된다.


272. 성총지위에 있다 함은 어떤 것인가?

성총지위에 있다 함은 대죄가 없어서 천주께 맞갖은 상태이다.



성체를 타당히 영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육체에 관한 것으로, 공심재를 지켜야 한다. 1957년 3월 25일에 발효된 교령에 의하면, 공심재는 영성체하기 한 시간 전부터는 비알코올성 음료를, 영성체하기 세 시간 전부터는 고체 음식 및 알코올성 음료를 섭취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밤중에 혹은 깊은 밤(四更)에 영성체하는 이는 세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



그러나 환자는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아도, 영성체하기 전 아무 때나 비알코올성 음료와 액체로 되어 있든지 고체로 되어 있는 약을 먹을 수 있다. 새 교령을 반포하면서 교황 비오 12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신자들에게, 영성체하기 전에 옛날부터 잘 지켜져 온 형태의 공심재를 지키라고 열심히 권고했지만, 반드시 그렇게 할 의무는 없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러니 이 특권을 이용하는 이는 모두 받게 되는 은혜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의 빛나는 표양으로써 그리고 우선적으로 고해성사 및 애덕의 행위로써 보답하기를 기원하노라." 옛날 형태의 공심재란 전날 밤부터 음식 및 음료(자연수는 제외됨)를 삼가는 것이었다.

아침에 영성체한 사람은 저녁에 다시 영성체하지 못한다. 병이 위중하여 영성체가 '여행을 위한 양식'을 의미하는 노자성체가 되는 때에는, 재를 지켜야 하는 모든 제한이 없어진다.



다른 조건은 영혼에 관한 것이다. 영혼에게 있어서 의식할 수 있는 대죄가 없어야 한다. 대죄 중에 있고 영성체하고 싶다면, 우선 고해하여 죄 사함을 받아야 하며 그런 후에야 영성체할 수 있다.



얼마나 자주 영성체해야 하는가? 그 문제에 있어서 교회는 금세기 동안에 고대의 규범을 되살렸다. 이제는 누구든지 매일이라도 영성체할 수 있으며, 성총지위에 있고 영성체할 올바른 의향이 있으면--즉, 더 많은 성총을 얻고 착한 생활을 살려는 의향이 있으면 그렇게 하도록 권고한다.



허영심으로 인해 영성체하든지, 다른 이의 존경을 받기 위해서 혹은 단지 습관적으로 영성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일용할 양식, 즉 주식(主食)의 형태로 자기를 주시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당신을 자주 영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의향임이 분명하다.


273. 대죄 중에 성체를 영하는 것은 중죄인가?

대죄 중에 성체를 영하는 것은 중죄인즉, "대저 합당치 않게 주의 몸을 먹고 마시는 자는 그 먹고 마심으로써 천주의 심판을 스스로 당하게 하는 것임이니라."(코린토전 11,29)



대죄 중에 성체를 영하는 것은 거룩하신 천주로 하여금 그 순간에 당신의 원수인 영혼 안에 억지로 임하시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