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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성서 복음서 - 요왕복음의 입문(위비 지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1-22

 


신약성서 복음서 - 요왕 복음의 입문  (위비 지음)

 

다른 세 복음 성사와 같이, 이 넷째 복음 성사도 자기 이름을 저서에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들과는 달리, 익명의 비밀스런 휘장 속에 자기를 등장시켜 출연한다. 그는 자기가 적은 사실을 목격하였을 뿐 아니라(즉 제자 중의 한 사람),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요복 13장23절, 19장26절, 20장2절, 21장7절과 20절)로 예수의 무릎 위에서 마지막 만찬에 참예하였고(요복 13장23절), 그의 비밀과 신임을 받은 자이니, 확실히 12종도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예수와 특히 친밀하였다는 이 점과, 이 익명의 제자가 또 시몬 베드루와 친밀하였다는 (요복 13장24-26절, 18장16절, 20장3-9절, 21장7절과 21-22절) 사실을 종합(綜合)하여 보고, 또 공관(共觀) 복음서와 종도 행전에서 같은 점을 연구하여 본 결과, 그가 제베데오의 두 아들, 야고버와 요왕 둘 중에 하나로 지목된다. 그런데 형 야고버는 44년에 아그립바 1세에게 치명되어, 넷째 복음서를 쓰기에는 너무 일찍이 죽었으므로, 결국 요왕 밖에는 다른 이가 될 수 없다.
 

신약 성서의 이 증거 외에 초대 그리스도교회의 수많은 증거가 위에 든 점과 잘 맞아, 그들이 넷째 복음서가 요왕의 저술한 것이라 명확히 말한 것은 놀랄바 아니다. 벌써 2세기 초엽에 있어, 안띠오키아의 성 이냐시오의 서간과 성 뽈리까르뽀가 필립삐 읍민들에게 보내는 서간에 시리아와 소 아세아 지방 신자간에 요왕의 가르친 도리가 있음을 말하니, 이 가르친 도리란 글로 적힌 것으로, 모든 이가 믿는 바이다. 둘째 세기 중엽에는 이 복음서의 인용(引用), 암시(暗示), 기록(記錄) 등의 번수가 늘어 지역적(地域的), 교리적 모든 점에서 볼 수 있으니, 그노시스 이단자(異端者)인 발렌띠노와 그의 으뜸 제자인 쁘똘로메우스와 헤라끌레온과 이들을 거슬러 크게 싸우던 성 이레네오도, 140년경에 마르치온과 같은 이단의 조장자(助長者)와 이를 반박하던 자들인 160년―170년경의 사르드의 멜리똔과 200년경의 떼르뚤리아노도, 156―172년경의 몬따니스 이단자들과 그들을 거슬러 치던 정통 신앙자(正統信仰者)인 히에라뽀리스 시의 아뽈리나리우스와 아뽈로니오스도 있고, 그 외에 외따른(단독單獨) 증인들로는, 177년경의 아테나고라스, 181년경의 안띠오키아의 테오필로스, 190―195년경의 에페소의 뽈리끄라또스, 200년경의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 150―160년경의 로마의 유스띠노와 그의 제자인 175년경의 따씨아노, 200년경의 무라또리라 불리는 경전의 로마인 저자 등이 있고, 여기에 둘째 세기 끝의 「종도들의 서간」이란 위서(僞書)도 보탤 수 있다.
 

이상 모든 증거를 보면, 교회가 넷째 복음을 처음 퍼쳐 나갈 때부터 예수의 즉제자,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의 저술로 받아들인 것이 똑똑하다. 많은 증인들이 저자를 요왕 종도라 불렀으니, 이를 테면 그노시스 이단자인 쁘똘로메우스와 헤라끌레온을 꼽지 않고서도, 아프리까의 떼르뚤리아노, 로마의 무라또리 경전, 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 및 리옹의 이레네오 등이 있다. 이 마지막 증인은 다른 이보다도 별달리 무게 있는 것은, 그가 아주 젊었을 때에 소아시아에서 지내는 동안 스미르네 읍의 주교 뽈리까르뽀를 잘 알았으니, 이는 『요왕과 주를 뵈온 자들과 같이 지내던』 자이었던 까닭이다. 이레네오에 의하면, 주의 가슴에 기댄 제자 요왕이 아시아의 에페소에 머물렀을 때, 『복음 성사 중 마지막 차례로 남과 같이 그도 복음을 글로 적었다』고 하였다. 이 복음을 저술한 때는 첫째 세기 끝쯤이니, 요왕이 도미씨아노 황제 때 빳모스 섬으로 정배 갔다가, 같은 황제의 붕어 후(96년), 에페소에 돌아왔을 때라고 한다. 이 외에도 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의 증언은 특히 기억할 만한 무게가 있으니, 그 이유는 넷째 복음의 특징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즉, 『요왕은 마지막 차례로, 그리스도의 생활의 외면(外面)은 다른 복음서에 그려 있음을 보고 친우의 권고에 따라, 성신께 감도되어 영적(靈的) 복음을 저술하였다』. 요왕은 장구한 사도 생활 끝에 복음을 쓸 때, 성신의 인도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생활의 천주다운 점을 더 깊이 깨달아, 이 점을 분명히 알리려 하였다. 그가 예수의 기적이나 말씀을 고른 것도,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천주의 아들이시오, 사람의 생명과 빛이심을 증명하려 한 까닭이다. 그래서 그의 풀이말은 공관 복음서에서보다는 더 신학적이다. 그러나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요, 더욱 깊은 곳을 밝혀 주는 것이다. 또 취급한 기적 이야기는 수가 적지만, 보통으로 말씀과 대화(對話)로 넓혀서, 그 뜻을 똑똑히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림과 뜻한 바로써, 넷째 복음이 역사와는 다른, 일종의 신비적 관상으로 변하여 버린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 반대로 성 요왕은 당시 그리스도의 육신이 허깨비에 지나지 않다고 말하던 도체또 열교인을 거슬러서, 그리스도와 그의 사업의 실다움(實質性)을 견지(堅持)하려고 한 것이다. 이 역사다웁게 하려는 마음씀은, 저자의 뜻하는 목적이 요구하느니만큼, 시간적 환경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라든가, 특히 그리스도의 생활에 관계되는 유데아의 축일에 대하여 정확히 가르침으로써든가, 현대 발굴(發掘)로써 잘 맞음을 알게 된, 저자의 지리에 대한 정확하고 풍부한 지식으로써 명확하다. 이 복음서도 다른 복음서와 같이 우선 증언이요, 특히 예수와 그의 모친의 사랑을 받아 사람이 되신 『말씀』의 비밀을 사랑 넘치는 눈으로 속깊이 뚫고 들어간 제자의 증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