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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성서 복음서 - 말구 복음의 입문 (위비 지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16



신약성서 복음서 - 말구 복음의 입문  (위비 지음)

 

그리스도교의 전통은 둘째 복음서를 종도들의 제자 외 한 사람인 말구의 저술로 인정하는 데 일치하니, 이것은 그리스도교 기원을 신화(神話)와 위작(僞作)으로 설명하려는 몇몇 편심적 학자 외에는 과격한 현대 비판론자들까지도 반대치 않는 바이다.


  또 둘째 성복음사가 신약에서 여러 곳(종도 12장 12,25절, 13장5,13절, 15장37,39절, 꼴로4장10절, 필립24장2절, 띠전4장11절, 베전5장13절)에 기록된 말구, 더 명확히 말하여 요안·말구와 동인(同人)이라는 것도 의심 없다. 그는 마리아라 부르는 예루살렘의 여사(女史)의 아들이었으니, 그 저택은 최초 신자들의 집합소로 사용되었다. 성 베드루가 44년에 유데아왕 헤로데 아그립빠 1세의 명령으로 투옥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사슬에서 풀려나와, 감옥에서 곧장 간 곳은, 「여럿이 모여 기구하던, 말구라 별명하는 요안의 모친 마리아의 집에로」(종도 12장12절) 가셨던 것이다. 말구는 초대교회에 있는 주목되는 선교사 중 하나인 발라바의 사촌이었으므로, 그한테 안띠오키아로 불려 갔다. 거기에서 45년경에 발라바와 바오로의 조수로 제일 전교 여행의 원로(遠路)에 올랐다. 그는 그들을 따라 치쁘로 섬을 거쳐 소 아세아 해안에 이르렀다. 빰필리아 지방 뻬르제 읍에 갔을 때에, 무슨 이유로써인지 모르나, 말구는 동행을 떼어놓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이같이 떠나감을 바오로는 섭섭히 생각하여 그후 잠시간 발라바와 불화하게 된 이유가 되었으니,50년경에 두 종도들이 새로운 전교길을 떠날 준비를 할 때, 발라바는 말구를 데리고 가려 하였으나, 바오로는 이것을 거절하여, 결국 각각 자기 원하는 곳으로 갈라져 가게 되었다. 그 후 말구는 다시 바오로의 총애를 받아 꼴로새 서간(4장10절)에와 필레몬 서간(24절)에와 띠모테오 후서(4장11절)에 바오로의 협력자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말구는 또한 성 베드루의 협력자였으니, 성 베드루는 그를 예루살렘에서 그의 모친 마리아 집에서부터 알았고 또 아마 세까지 주었을 것이다. 베드루가 로마에서 첫 편지를 쓰실 때, 말구를 그 곁에 두고 「당신 아들」(베전 5장13절)이라 불렀다. 


  전통은 제2복음서의 저술과 말구가 베드루에 협력한 것을 인연시켰다. 이 전통의 증거로 불명확하나 최초의 것은 빠삐아스가 장로 혹은 원로 요왕의 말을 전하는 그것이다. 즉 「원로의 한 말씀을 들어 보라. 말구가 베드루의 통역이었으므로 정확하기는 하나 순서 없이 베드루가 주의 언행에 대하여 생각나는대로 말한 것을 적었다. ―대저 그는 주의 말씀을 친히 듣지 못하였고 주의 제자도 아니었으나 나중에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베드루를 따라다녔다. 베드루는 순서 있는 저작을 하지 않고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주의 말씀을 가르쳤으니, 말구는 베드루의 말하는대로 그 사정을 기술하였으므로 잘못한 것이 없다. 대저 그가 관심한 것은 들은 바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또 거짓것을 말하지 않은 이것 하나뿐이었다」(에우세비오 저 교회사, 3·39-15·).


  성 유스띠노는 155년경에 「뜨리폰과의 대화」중에서 둘째 복음을 베드루의 (혹은 예수)의 추상록(追想錄)으로 인용하였다. 그뒤에 이레네오는 180년경에, 또 떼르뚤리아노와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는 3세기 초엽에, 그 후 얼마 아니있어 오리제네스 등 저자들은 말구가 베드루에게 들은 그대로 복음서를 적었다는 것이 이의 없는 전통이라 단정하였다.


  그러나 저술 연대에 대하여는 일치치 않다.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에 의하면, 베드루의 생존시에 로마의 신자들이 수종도의 교리강화를 글로 적어 주기를 말구에게 청하였다 하였으나, 이레네오에 의하면, 이 복음의 저술은 베드루, 바오로의 순교 후에 된 것이라 하였다. 이상 두 설 중에 어느것을 따르든지 70년 이전에 저술된 것만은 확실하다.


  말구 복음은 세 공관 복음 중 가장 짧은 것이다. 예수의 강론은 마테오와 루까에 있어보다 대단히 생략되었다. 그 대신에 이야기 풀이에 있어서는 보통으로 가장 자세하고 구체적이요 화려하다. 그것은 충실한 기억에 예수의 생활이 반영된 것이요, 또 식안(識眼)이 열린 평민의 기억의 소산이다. 말구가 추상을 수집하여 적은 이 기억은, 전통이 긍정하듯이, 베드루의 기억이요, 또 이 복음서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제자들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