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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성서 복음서 - 성 복음서 입문(위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2-13


신약성서 복음서 - 성 복음서 입문  (위비)

 

구술(口述) 복음에서 기술(記述)된 복음으로


1. 복음의 시초는 구술 복음이다


우리가 「복음」이란 말을 들을 때 우선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그레까(그리스) 문, 라띤 문, 기타 국문으로 된 복음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초기에는 이렇지 않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복음은 한권 서적이 되기 전에 한 「말씀」이었고, 쓰이기 전에 설교되었다, 읽어지기 전에 귀에 들리었다. 「신앙은 설교를 들음에서 생기고, 설교는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되는 것이다」(로마 10장17절). 복음은 그 첫 기원에 있어, 처음 솟아나옴(湧出)에 있어 그리스도의 설교이었고, 그가 인간에게 전하시던 천주의 통첩(通諜)의 구술된 내용, 즉 구원의 복음(복된 소식)이었다.
 

세상에 생존하시는 동안, 그리스도는 「말씀」을 씨뿌리셨고, 청중의 마음에 호소하셨다. 이 때, 듣는 자의 마음씨를 따라 서로 큰 차이가 있는 결과를 내었으니, 혹은 경솔함으로 날려보내기도 하고, 혹은 사욕(邪慾)으로 숨막아 죽이기도 하고, 혹은 그와 반대로 선의를 가진 영혼 안에서는 자라 결실하기도 하였다. 종도들은 이미 그리스도 생존시에 얼마간의 설교 실험을 하여 보았다(말복 6장7절-13절). 


 그들은 성신 강림 후 계속하여 설교의 임무를 보았다. 설교는 기구와 신자 집회의 사회(司會)와 함께 그들의 본질적 요무(要務)이었으니 (종도 6장4절), 그들은 「말씀」에 봉사하는 자들이었다(루복 1장2절).


그러나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는 종도들의 설교가 그리스도의 설교의 내용보다 더한 것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게 천주의 나라의 임함, 이 나라에 들어가 생활하게 되는 조건, 기외 제자들간의 호상(互相) 관계, 제자들과 스승이신 주와의 관계, 천주 성부와의 관계 등을 규율(規律)하는 계명, 또 신자들이 유다 회당에서 분리된 한 교회 단체를 이루는데 필요한 제도(制度)와 예식(禮式) 등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지상생활을 이야기 아니하셨으니, 이것은 되어가는 도중에 있었다. 역사는 다만 지난 일에 대하여 서만 말함으로써이다. 그는 사방에 두루 다니시며 선을 베푸셨으니(종도 10장38절), 병든 육신과 죄 있는 영혼을 치료하셨고, 제자들의 기억에 사라지지 않도록, 당신의 양선, 권능, 자비, 결백, 성부와의 형언치 못할 일치의 깊은 감명(感銘)을 박아 주셨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기적, 기구의 철야(徹夜), 절대적 청빈(淸貧), 형제인 인생을 위한 수난과 죽음, 이 모든 것은 그의 강론과 함께 다 같이 강생하신 「말씀」의 계시(啓示)에 속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 아오스딩의 말씀 같이, 그리스도께서 천주의 「말씀」이시니까, 그의 행동도 우리에게는 일종의 「말씀」즉 교의(敎義)와 훈계가 되는 것이다.


종도들은 천주의 성자의 계시와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그들이 귀로 친히 들은바와 눈으로 친히 보고 손으로 친히 만진바를 인간에게 전할 사명을 맡았으므로, 예수께서 발령하신 계명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명과 인격에 관한 그리스도 자신의 선언(宣言)을 공포함에 만족할 수 없었고, 또한 그의 행적을 증명하고 그 생활의 중요한 점, 특히 공무(公務), 즉 「가르치신바」와 함께 또한 「실천하신바」(종도 1장1절)를 서술할 필요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 「주 예수께 관한 사정」(종도 18장25, 28, 31절)을 형성하던 것이다.

 

2. 종도들의 교리 강화(敎理講話)


모든 것을 다 말한다는 것은 특히 대중에게 하는 설교 같은, 완전한 풀이에 정합치 않은 전도방식에 있어서는 더욱이 불가능한 일이므로, 종도들은 자연적으로 그리스도의 언행(言行) 중에서 그리스도를 인식케 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말씀」의 봉사자간에는 큰 줄기에 있어 일률적인 일정한 가르침틀(교수표준형敎授標準型), 예수의 생활과 교의를 전하는 공통한 방식이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소위 교리 강화(가떼케시스)라 불리는 것이다(루복 1장4절, 종도 18장25절, 갈라 6장6절).


이 교리 강화의 일반적 내용을 규정하는 데 있어, 종도들의 회합, 그중에도 특히 성 베드루의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는 것은 의심 없다. 종도 행전에는 새로 난 교회의 으뜸 설교자로 나타나는 수종도의 첫 설교의 요지가 기재되어 있다. 이 설교중의 하나인 저 『꼬르넬리오』일가 친척에게 하신 베드루의 강론은 유달리 뜻깊은 바가 있다. 이 설교에서 우리는 첫 교리 강화의 초안(草案)과 같은 것을 본다. 즉 「너희도 알거니와, 이 말씀은 요안이 그 세를 강론한 후로 갈릴레아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유데아에 전하였으며, 천주 성신과 전능으로써 예수 나자레노를 축성하시매, 예수가 두루 다니시며 은혜를 베푸사, 마귀의 압복하에 있는 모든 이를 낫게 하시니, 천주 예수와 한가지로 계심이러라. 우리는 예수가 유데아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증거하는 자로라. 저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으나, 천주는 제삼일에 저를 부활케 하시고 또한 발현케 하실새, 모든 백성에게 발현케 아니하시고 오직 천주 미리 간택하사 증인이 될 우리들에게 발현케 하셨으매, 우리는 예수 죽은 자 중에로 조차 부활하신 후에 함께 먹고 마셨노라」(종도 10장37-41절)


이상 교리강화의 요지는 후에 성 말구 복음이 따를 구상(構想)의 초안이라 하겠으니, 즉 말구 복음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어, 一, 요안 세자의 설교와 예수의 영세(領洗), 二, 갈릴레아에 있어서의 예수의 전교, 三, 갈릴레아에서 유데아와 예루살렘으로 옮겨 가심, 四, 수난, 죽음, 부활과 부활 후 발현 등으로 되어 있다.

 
그 외에 다른 두 복음서, 즉 성 마테오와 성 루까의 기록한 복음서도(요왕 복음은 그 특수성으로 여기에는 같이 논할 것이 아니다) 비록 예수의 설교를 더욱 많이 싣기는 하였으나 같은 순서를 밟았다. 이상 세 복음서의 내용의 대부분은 나란히 줄지어 실어 놓고 일별하여 읽어 볼 수 있으므로, 이 세 복음서를 공관 복음서(共觀福音書)라는 명칭으로 불러, 그리스박하(1776) 저술인 「복음의 공관」이후로 신약의 비판에 있어 상용되어 온다.


3. 기록된 복음

 

복음의 설교가 복음서의 저술에 앞섰고, 또 이것을 효과있게 준비한 것은 확실히 긍정할 수 있으나, 그 과도(過渡)의 자세한 것을 묘사함은 문헌(文献)의 결핍으로 불가능하다. 초세기 전통에서 우리가 아는 바에 의하면, 마테오 종도가 빨레스띠나에 거주하며 아라메아 말을 사용하던 유데아 사람들을 위하여 그 말로 교리 강화의 첫 저술을 남겼다. 그 다음, 그레까말을 사용하던 예루살렘 주민들과 특히 복음이 빨레스띠나 지경을 넘어 그레치아와 로마 판도 내에 거주하는 분산된 유데아인들과 그들의 종교를 따르는 천주를 두려워하는(종도 10장22절, 13장16절, 26절, 43절, 50절, 16장14절) 이방인(異邦人)에게 있어서는 복음을 그레까 말로 통역 내지 번역의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성 루까는 자기 성 복음 서문에 있어 그보다 먼저 「여러 사람들이―혹은 많은 사람들이―우리 중에 된 바 사적을 과연 힘써 차례로 저술하되 처음부터 친히 본 자들과 및 도를 전하던 자들이 우리게 전한대로 하였나니라(루복 1장1절)고 기록하였다」 성 루까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역사를 저술한 사람 중에는 아라메아말로 쓰신 성 마테오와, 성 베드루의 교리강화를 그레까말로 적은 성 말구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는 루까 성사가 말하는 「많은 사람」을 이룰 수는 없으니, 그 이유는, 성 루까는 특히 그레까말로 적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이들이 우리의 복음서와 같은 분량으로 그리스도의 역사를, 요안 세자에게 세 받으심부터 수난, 부활에 이르는 모든 점을 기록하였다는 것은 증명되어 있지 않다. 즉 이미 다른 곳에서 말한 바 있음 같이, 그리스도의 공생활 전부를 적기 전에 그의 말씀과 행적을 부분적으로 적기를 시작하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으니, 비컨대, 제1복음서에 쓰여 있는 산상(山上) 강론집 같은 격언의 수집이라든가, 수난의 역사와 같은 한 무더기진 이야기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문장의 이 첫 작품 중에서 어찌하여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서만이 남아서 교회 안에 인정되어 있는가? 아마 이 복음서가 전에 나타난 문헌을 이용하였으므로 가장 완전한 것이었을 것이다. 즉 마테오와 루까는 그 공통한 예수의 「강론 말씀」을 적음에 있어 전연 동일한 자료에 의한 것이 아니면, 적어도 그것이 문헌이거나, 구전(口傳)이거나,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는 참고자료에서 온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루까 복음에 있어도 그 고유한 부분에 있어서는 (9장51절-18장14절) 특별한 자료가 있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교회가 이 복음서를 특선한 결정적 이유는, 우리 사복음서(四福音書)가 종도의 권위를 구비하고 나타났다는 데 있는 것이다. 즉 그중 둘은 마테오와 요왕 종도 친히 저술하신 것으로 되어 있고, 남은 둘은 종도들과 긴밀한 접촉이 있던 종도의 즉제자(卽弟子), 즉 베드루의 교리강화를 적은 말구와, 바오로의 가르침을 반영하는 루까의 저술로 되어 있다. 복음서는 교회 안에서 기록되고,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되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창설하시고 종도들이 다스리는 교회가 현존하느니만큼, 생활한 교도 기관을 대행(代行)할 수 없다. 교회는 계시의 위탁물을 보관하는 권한을 가졌으므로, 글로 기록되고 안됨을 불문(不問)하고, 신앙과 도덕에 관한 일에 있어 홀로 권위 있는 해석 기관으로 존속하여 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전달의 중요한 부분을 서로 다른 여러 저자들이 여러 책에 적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가 하나뿐임과 같이, 복음도 본시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교회는 명료히 기억하고 있었다. 교회는 구원의 복음 하나만을 인정한다. 그런데 이 유일한 구원의 복음이 마테오에 의하여, 말구에 의하여, 루까에 의하여, 요왕에 의하여 네 모양으로 제시(提示)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이레네오』가 「열교를 거슬러」(3·11·18)「네 가지 모양을 가진 한 복음」을 지시한 것을 보는 바이다.


강력한 독창성(獨創性)을 띤 환경 중에 저술된 우리의 복음서는 일반 문학작품에 있어 새로운 변화를 보인다. 「이 복음은 어떠한 고전 문학의 형식에서도 어떠한 그레까 대중 문예 작품에서도 그 본을 뜨지 않았다」. 성 유스띠노가 복음서를 「종도들의 수기(手記)」라 불러 「소끄라떼스에 대한 쎄노폰의 수기 혹은 추억」에 비교하는 뜻을 가졌다 할지라도, 이 근접점을 과중시할 것이 못된다. 쎄노폰의 「수기」는 소끄라떼스가 여러 과제(課題)에 대하여 가진 사상과 그 교설의 동기(動機) 등을 말하여 주나, 소끄라떼스의 전기를 소묘하지는 않았다. 이와 달리, 복음서는 예수의 완전한 전기(傳記)는 아닐지라도, 그 역사의 주요한 점을 그렸다.


복음 성사들은 대외적(對外的) 원수의 공격을 거슬러 그리스도를 직접 변호하려 저술치 않았다. 그들은 진실한 증인으로서 저술하였고, 그리스도의 생활과 도리를 단순히 제시함으로, 선의를 가진 영혼에게 환영받으리라 믿었었다. 『더 그랑매송』신부의 말씀 같이, 「복음서는 변호보다도 현시(顯示)라 할 것이니, 신덕을 북돋우고 생활한 번짐(전파傳播)으로 전하여 주고, 능력 있고 지력 있는 자에게 이미 튼 싹을 커지게 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서로 친근한 한 분위기를 이루는 공통한 점이 있는 한편, 또 각각 독특한 점을 구비하였으니, 이것이 이제부터 간단히 논하려는 점이다.